주현절 첫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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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우리가 받아야 하는 세례
성경구절 이사야서 42:1-9 / 사도행전 10:34-43 / 마태복음서 3:13-17
설교자 임영섭 목사
예배일 2023-01-08
전주 요단강가에 오신 주 예수(D. Buxtehude)
찬양1부 목마른 사슴같이(박재훈)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주 예수 다스리시리(E. H. Thima)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S. J. Vail)
후주2부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S. J. Vail)
성경본문 이사야서 42:1-9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 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을 만드시고, 거기에 사는 온갖 것을 만드셨다. 땅 위에 사는 백성에게 생명을 주시고, 땅 위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주셨다.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어 주고, 너를 지켜 주어서,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 줄 것이다. 나는 주다. 이것이 나의 이름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고, 내가 받을 찬양을 우상들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전에 예고한 일들이 다 이루어졌다. 이제 내가 새로 일어날 일들을 예고한다. 그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일러준다.”

사도행전 10:34-43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사역이 끝난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서,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서 3:13-17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것이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세례

 

오늘은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주현절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마태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시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립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확증을 받고,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서,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예수의 그 사역은 오늘 이사야서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죄를 사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눈먼 사람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내며,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주는, 한마디로 인간해방을 위한 사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현절을 맞이하여, 신임 집사님들과 신임 권사님들의 신임제직 임직식을 치렀습니다.

이 주현절에 신임제직을 임명하는 까닭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처럼, 오늘 신임 집사님들과 권사님들, 그리고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받은 우리 모두가 주님과 함께 공생애를 시작하자는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나 개인의 일과 행복과 기쁨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예수의 메시아로서의 공공의 삶처럼, 내가 속한 교회공동체와 이 사회와 역사를 위해 살자는 그런 의미로, 우리는 이 주현절에 제직을 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세례 사건 안에는, 이러한 메시아의 공생애, 일꾼으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특징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는 오늘 세례를 받는 중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리심으로써,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모든 일을 감당하셨다는 걸 알려줍니다.

 

그래서 오늘 이사야서 말씀에서도 보면, 메시아로 오시는 하나님의 종에 대해서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영을 주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도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따라서 오늘 예수가 받은 세례는 예수가 강한 메시아, 라는 걸 인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지금 이 세례의 자리는 예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메시아가 된 것이 아니며, 앞으로 맡은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사람들은 어린 티를 벗고 성장하여서 스스로 어떤 일을 하면서 성공을 이룰 때, 종종 홀로서기, 자수성가,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지금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에게 강조되는 것은 자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예수,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예수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성인이 되어 스스로 독립하는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붙들리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오늘 함께 읽은 마태복음서에는, 예수의 세례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데, 여기에는 성인이 되어도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뜻뿐만이 아니라 아예 다시 어린아이가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고 물 위로 올라오셨을 때 주의 영이 비둘기같이 내리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예수가 세례를 받는 장면을 묘사하는 말씀이 아니라, 매우 특별한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표현인데, 하나님의 영이 마치 비둘기가 내려와 예수를 끌어안고 품듯이 임하셨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이미 창세기 11절과 2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나왔던 표현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고 할 때, 이 말씀은 독수리가 알을 품듯이 날개를 펴서 물 위에 떠 있는 걸 가리킵니다.

태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날개를 펴고 알을 품듯이 떠 있는 것,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영이 물 위로 나온 예수에게 품에 안 듯이 임하셨던 것,

 

따라서 지금 마태복음서는 예수의 세례가 아무것도 없는 맨 처음으로 돌아간 사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사건, 마치 어린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과 같은 일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모든 장면에서 하늘이 열렸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버지가 자식을 향해 외치듯이,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런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오늘 이사야서에서도, 메시아의 사명을 열거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 위에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창조와 생명의 사건을 일깨우십니다.

 

이러한 예수의 세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초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의식이 됩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초대교회에서 예수의 세례를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이 세례 의식을 치를 때, 인상적인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옷을 완전히 벗고 세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기록 중에 3세기의 사도전승이라는 것이 있는데, 전체 43장의 내용 중에서 무려 15장부터 24장까지 열 장이나 되는 분량이 세례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록들을 보면,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옷을 완전히 벗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세례는 여성과 남성이 같이 받는 것이 아니라, 동성들끼리 함께 받는 세례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렇게 세례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전승를 비롯해서, 안디옥에서 기록된 사도들의 가르침, 4세기의 예루살렘의 시릴이 쓴 <신비에 대한 세례교육>, 콘스탄티노플에서 크리소스톰이 기록한 <세례 교육>, 이그나티우스가 안디옥에서 쓴 <사도헌장>까지, 여러 지역과 세대를 거쳐서 초대교회가 치른 세례의식에는 모든 것을 벗고 치르는 세례가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기에 부끄러운 일인데, 왜 초대교회에서는 이 거룩한 세례를 받을 때 이런 방식을 택했는가?

그것은 세례가 바로 나를 벗는 것, 나에게 덧입혀진 것들을 벗어던지는 것, 마치 알몸으로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서 천지창조가 시작된 것처럼, 세례는 나의 나된 것을 부인하고, 처음으로 기본으로 신앙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의 세례요, 우리의 세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 2023년 새해에, 또 한 번의 주현절을 맞이하는 우리는, 예수의 세례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덧입혀진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신앙의 순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가 자랑하는 온갖 지식과 경험과 사상과 이론과 능력을 벗어던지고,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처럼 서는 것, 다시 한번 맨 처음으로 돌아가 그 순수함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체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현절의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 )

지난해 마지막 날인 1231일에는 직전 교황이셨던 베네딕토 16세가 95세를 일기로 선종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뉴스를 통해 접하셨겠지만, 지난 목요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베네딕토 16세의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에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후에 78세라는 고령의 나이로 교황으로 선출됐지만, 8년 만에 건강 문제로 사임하셨고, 교황이 살아 있는 동안 자진해서 사임한 것은 598년 만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베네딕토 16세는 즉위할 때부터 그가 신학적으로 변절을 해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 비판 때문에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았습니다.

 

원래 그는 교황이 되기 이전에 요세프 라칭거, 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독일에 있는 여러 대학에서 신학을 오랫동안 가르쳤던 교수였고, 1962년부터는 바티칸공의회에서 가톨릭 신학계의 대표적인 신학자로서 큰 공헌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바티칸공의회 즈음에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한스 큉이나 칼 라너 같은 급진적인 신학자들과 함께했던 진보적인 성향의 신학자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나중에는 보수적인 신학을 주창하면서, 이후에 대주교와 추기경이 된 이후로, 교황청의 신앙교리성 장관이 되었고, 바티칸의 성서위원회와 국제신학위원회의 위원장이 됩니다.

저도 진보적인 신학수업을 받은 입장에서, 라칭거의 이러한 신학적인 행보에 대해 저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에 그는 책을 출간하는데, 그 책 이름이 바로 나자렛 예수, 라는 책이었습니다.

세 권으로 된 이 나자렛 예수, 라는 책을 지난 주간 목회실에서 구입해서 우리교회 도서실에 비치해 두었습니다.

내용이 어렵지 않은 책이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도서실에서 빌려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 내가 그동안 큰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이렇게 깨닫고 반성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20세기 전 세계를 휘몰아쳤던 온갖 이념과 사상과 지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한 신학자로서 항상 교리와 개념과 담론과 사상 속에 살아 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런 삶을 영위하다가 나중에 무엇인가 깨닫고, 나자렛 예수라는 책에서, 그리고 그의 신학의 여정에서, 모든 것을 뒤로하고, 마지막까지 강조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와 성경입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가 대단한 진보적인 신학사상과 이론을 설파하던 1966년에도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을 정리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의회의 진술들은 결코 지적인 가르침의 모음이거나 단순히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지침들의 집합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영적인 과정의 산물이다.

교회의 쇄신도 그 쇄신의 척도는 항상 성경이 증언하는 그리스도, 바로 성경과 예수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

 

결국 베네딕토 16세는 진보에서 보수로 변절한 것이 아니라, 그냥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순수에 담긴 진수를 깨닫고 화려한 옷을 벗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예수는 왕관을 쓴 예수가 아니라, 하늘보좌에 화려한 옷을 입고 좌정하고 있는 예수가 아니라, 2천 년 전 팔레스틴 땅에서 알몸으로 세례를 받던 예수,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리다가 신음 속에 죽은 예수, 바로 그 예수였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는, 교회와 역사를 개혁하는 출발은, 묵묵히 주의 이름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비둘기같이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변의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이 두 가지를 강조하다가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새해를 맞이하였고, 오늘은 신임제직을 임명하고, 다음주에는 앞으로의 교회공동체의 일들을 논의하고 다짐하는 제직협의회를 갖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우리를 공적인 삶과 신앙으로 부르시는 주현절 첫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전환기를 맞이하는 교회를 갱신하고, 이 혼란한 사회와 역사 속에서 빛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그 출발은 먼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겸손하게 나에게 덧입혀진 모든 자랑들을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영을 입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냥 아기처럼 예수님, 예수님, 주님의 이름만 계속 불러도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어떤 성경지식이 없더라도 어린이들처럼, 창세기부터 소리내어 성경을 읽어도 됩니다.

이 세상을 변혁시키고, 이 땅에 주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에, 우리의 지식과 능력과 힘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특별히 오늘 새로이 경동교회의 제직이 되시는 여러분, 이 주현절, 우리가 받아야 할 세례, 우리가 결단해야 할 신앙은, 그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의 나된 것을 벗는 일인 줄 믿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린아이가 될 때, 올 한 해도, 예수를 메시아로 이끄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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