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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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성경구절 이사야서 65:17-19 / 고린도전서 15:19-22 / 요한복음서 20:1,13-18
설교자 임영섭 목사
예배일 2022-04-17
예배 주일
전주 주가 부활하셨다, 할렐루야(G. P. Palestrina)
찬양1부 주 부활하신 날에(C. F. Mueller)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예수 부활, 알렐루야!(R. C. Clatterbuck)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주 오늘 부활하셨도다(arr. D. Bish)
후주2부 승리하셨도다 알렐루야(G. Young)
성경본문 이사야서 65:17-19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5:19-22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니, 또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의 부활도 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20:1,13-18
주간의 첫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전하였다.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오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총이 여러분 가운데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사건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이 땅에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왜 있어야 하는지 그 존립의 근거와 정당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이는 그리스도교와 교회와 우리의 신앙도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의 부활사건은 예수가 어떻게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는지 그 부활의 과정을 자세히 밝히기보다는, 누가 그 부활의 현장을 목격했고, 누가 그 부활의 소식을 듣고 세상에 전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부활을 경험한 후 어떻게 바뀌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러한 부활의 증인들 가운데 성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당시 예수의 제자들이 아니라, 오늘 요한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를 만나 치료의 기적을 경험한 후에 예수를 따르게 됩니다.

예수를 따르던 여성들은 막달라 마리아 외에도 여러 명이 있었는데, 최근의 성경 연구들은 예수와 함께했던 이 여성들을 여성 제자들, 여성 사도들 이렇게 부릅니다.

그만큼 이 여인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열두 명의 남성 제자들 못지않게, 아니 어떻게 보면, 남성 제자들보다 더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위해 더 헌신했던 인물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과정에서도, 복음서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가고,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예수를 팔아넘겼지만, 이 여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함께했던 걸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예수는 정치범으로 사형당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있다는 것은 로마의 정치적인 반란자로 체포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 제자들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내걸고, 예수를 포기하지 않고 따르면서, 끝까지 예수와 함께했던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성 제자들이 복음서에서 언급될 때마다 그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면서, 가장 중요했던 인물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주요한 인물로 열네 번이나 나올 정도로 큰 비중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 20장 본문을 보더라도, 그녀는 에수의 부활에 대한 최초의 증인으로 나옵니다. 이른 새벽에 예수의 시신을 모신 무덤에 가장 먼저 갔었고, 가보니 무덤 어귀를 막고 있던 돌이 옮겨져 있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먼저 만나서, 부활하신 예수의 얼굴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고, 그 경험을 다시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그것을 세상에 전하는 첫 번째 증언자가 되었다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존립의 근거가 되지만,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제도화되어 가는 초대교회에서,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교회 지도자의 권위를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 진정한 사도가 되는 기준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봤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1장과 2장과 3장과 5, 여러 군데에서, 부활의 증인이 바로 사도이고,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의 현현을 체험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바울도 기회가 될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이 베드로와 제자들,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에게 일어난 일이며, 부족한 자신에게도 일어났다고 강조하면서, 바울 자신도 사도라고 바울서신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베드로는 예수의 수제자로서, 가장 위대한 사도로서, 이후에 교회의 수장으로서 큰 존경을 받았지만, 복음서를 보면 여성 제자들에 비해 더 낫다고 할 만한 모습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마가복음서 8장을 보면, 예수께서 몇 개의 빵과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경험했지만, 베드로는 바로 이어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 빵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염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렇게 기적을 경험하고도 빵이 없다고 걱정이나 하냐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께 꾸중을 들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함께 있었지만, 이들은 잠을 자느라 예수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시고 힘들어하시는지 알지 못했고 함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알려주셨을 때에도, 베드로는 그러시면 안 된다고 반대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고 질책하십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임박하셨을 때에도, 예수께서 예고하신 대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베드로는 이미 고기를 잡던 어부로 예전처럼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 예수를 만난 갈릴리부터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는 예루살렘까지, 한시도 예수를 부인하거나 포기하거나 배반하지 않고, 일행을 도우며 끝까지 동행합니다.

그러다가 그냥 부활의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라, 최초의 증인이면서, 그것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인물이 됩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복음서에서 모두 그녀가 부활의 첫 증인이라고 말씀함으로써, 그녀가 어떤 제자들보다, 어떤 사도들보다, 더 권위 있는 제자요 사도라는 걸 보여줍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가진 성경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여러 문서들에서는 이 막달라 마리아를 다른 남자 제자들보다 더 위대하고 당당한 인물로 소개합니다.

마리아복음서를 보면, 그녀는 주님의 신비로운 계시를 깨달은 자로서, 남자 제자들을 가르치고 독려하는 인물로 나옵니다. 부활을 경험했으면서도, 당시 남자 제자들은 예수가 승천하고 떠난 뒤에 두려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을 깨우치고 위로한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도마복음과 빌립복음에서는 베드로가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편애하신다고 불만을 터뜨리지만, 오히려 예수는 베드로를 거들떠보시지 않고, 마리아를 더 칭찬하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여러 문서들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 사이에 서로 갈등이 일어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이것은 당시에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 못지않은 영향력과 권위를 교회 안에서 갖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2세기에 활동한 히폴리투스는, 하와는 선악과를 먹었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인류에게 새 생명의 실과를 준 여인이라고 칭송합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초대교회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부르는 공식적인 호칭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사도들의 사도”, “사도들 가운데 사도”, 이런 최고의 칭호였습니다.

 

이러한 막달라 마리아를 칭송하는 교회의 전통은, 초대교회의 신앙의 가치가 세상의 가치관과 달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당시 유대인 여성은 법정에서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알아도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남성에 비해 판단력이나 도덕적인 능력이 열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처음 보았다는 성경 말씀은, 예수의 부활이 거짓말이고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에게 좋은 시빗거리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기를, 너희는 예수가 부활한 메시아라고 하지만, 그 부활한 예수를 처음 증언한 사람이 여자라면, 여자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막달라 마리아를 사도 중의 사도, 예수의 최고의 제자로 여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초대교회는 세상의 다른 기준보다, 예수가 절실하고, 예수 없이는 살 수 없고, 예수를 위해서 애통하다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이, 최고의 덕목이라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교회가 커지고,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교회에 돈과 권력이 모이면서, 이 위대한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에 놀랄 만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서 7장에 나오는 죄를 지은 한 여자와, 요한복음서 83절에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 성경에서는 구체적인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종교권력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연결시키면서,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들의 사도가 아니라, 이제는 창녀와 죄인으로 둔갑이 되기 시작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막달라는 당시 갈릴리에 있는 한 지역의 이름이었지만, 창녀를 가리키는 마가들라, 라는 단어로 바뀌면서, 당당하게 죽음을 불사하며 예수를 따랐던 부활의 증인이, 음란하고 죄가 많아 눈물을 흘리는 여인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면서 591년 교황 대그레고리는 로마에 있는 성지오만지 라테라노 성당에서 있었던 고난주간 성 목요일 예배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죄인이자 창녀로 공식적으로 선포합니다.

죄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 가서, 오늘 요한복음서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울면서 회개했기 때문에, 그녀는 회개한 창녀였다는 설교였습니다.

그 후로 예수의 제자요, 부활의 증인이며, 사도들의 사도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이후 1400년 동안 우리의 머릿속에 죄인으로 창녀로 음란한 여인으로 각인이 되어 왔고, 영화나 소설 등에서 그녀는 예수를 유혹하고 예수와 결혼하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면서, 예수의 부활이 단순히 예수, 라는 한 사람의 육체적인 소생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더 높고 넓고 깊은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의 죽음은 육체만의 죽음이 아니라 예수가 가르치고 선포하고 살아내었던,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죽음에 몰린 사건이었습니다.

반대로 예수의 부활은 단순히 몸의 부활만이 아니라, 자칫 십자가에서 희생당하고 죽고 없어질 뻔했던,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하나님에 의해서 되살려지고, 세상 가운데 높이 들린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서 28장에서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로 가셨고, 여인들과 제자들에게도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예수가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면, 예루살렘으로 가고 로마로 가는 게 더 유리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가치, 예수의 가르침과 뜻을 따랐던 여인들과 제자들은, 예루살렘과 로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변질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기쁜 소식으로 선포된 예수의 부활은 예수라는 하나님, 예수라는 메시아, 예수라는 한 인물이 죽었다가 살아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의 진정한 부활은, 오늘 우리에게서 막달라 마리아라는 인물이 가진 그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는 겁니다.

예수가 너무나 절실해서 애통하며 십자가 길을 따르는 약하고 부족한 이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역사에서 다시 살아나도록 하는 것, 나의 강한 능력과 재물과 지식과 권세가 아니라, 내 안에 막달라 마리아, 내 안의 아픔과 슬픔과 약함과 불안이 예수를 만나 음성을 듣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로 일어서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부활절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를 처음 만나 갈릴리부터 예루살렘까지, 골고다부터 빈 무덤까지, 끊임없이 예수를 따르며, 그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여인의 애통과 간절함이, 여러분의 삶과 신앙 속에서, 그리고 경동교회 공동체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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