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첫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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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와서 아침을 먹어라
성경구절 민수기 13:31-14:10/ 사도행전 17:10-12/ 요한복음서 21:3-14
설교자 배영호 목사
예배일 2020-12-27
전주 지난해 주의 은총에 감사하나이다(J. S. Bach)
찬양1부 내 영혼이 은총 입어(J. M. Black) 특송: 김경원 집사
지휘자
반주자 신채우 집사
찬양2부
지휘자
반주자
후주1부 예부터 도움 되신 주, 늘 보호하소서(W. Croft)
후주2부
성경본문 민수기 13:31-14:10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말하였다.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 백성은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그러면서 그 탐지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땅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삼키는 땅이다. 또한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키가 장대 같은 사람들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또 네피림 자손을 보았다. 아낙 자손은 네피림의 한 분파다. 우리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온 회중이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온 회중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우리가 이 광야에서라도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왜 우리를 이 땅으로 끌고 와서,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왜 우리의 아내들과 자식들을 사로잡히게 하는가?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들은 또 서로 말하였다. "우두머리를 세우자.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가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그러자 그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이들 가운데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슬픔에 겨워 자신들의 옷을 찢으며,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탐지하려고 두루 다녀 본 그 땅은 매우 좋은 땅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주님을 거역하지만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그들의 방어력은 사라졌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온 회중은 그들을 돌로 쳐죽이려고 하였다. 그 때에 주님의 영광이 회막에서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타났다.

사도행전 17:10-12
신도들은 곧 바로 그날 밤으로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냈다. 두 사람은 거기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회당으로 들어갔다.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서 믿게 된 사람이 많이 생겼다. 또 지체가 높은 그리스 여자들과 남자들 가운데서도 믿게 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요한복음서 21:3-14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나가서 배를 탔다. 그러나 그 날 밤에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다.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잡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하였다.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서, 벗었던 몸에다가 겉옷을 두르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백 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A.D 50년부터 3년간 이루어진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은 자신의 뜻과는 전혀 다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마케도니아 지방, 지금의 그리이스 북부 지방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곧 유럽에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마케도니아 지방에 이른 바울은 빌립보, 데살로니가를 거쳐 베뢰아에 이르게 됩니다. 늘 그랬듯이 바울은 유대인 회당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선교지에서 현지 실정을 살피며 선교지에 대한 다각적 정보를 수집하고 또 인간적 교제의 발판을 마련하기에 회당은 가장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베뢰아에서도 그의 선교방식대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 먼저 동족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에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17:11)고 하였습니다. 옛 개역 한글성경은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하였고, 개역개정판은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또 공동번역 성경은 그 곳 유다인들은 데살로니카 유다인들 보다 마음이 트인 사람들이어서 말씀을 열심히 받아들이고 바울로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서를 연구하였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고상하여서, 신사적이어서, 너그러워서, 마음이 트인으로 번역된 성서 헬라어 유게네스테로이출신이 좋은’, 또는 고귀한 태생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noble character’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후천적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태생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천성적으로 심성이 좋고, 됨됨이가 좋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편견이 없다는 것입니다. ‘편견이란 무지의 자식이란 말이 있는데, 편견(prejudice)이란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한쪽으로 치우쳐 공정하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같은 편견이 없으니까 마음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은 마음이 트인이라고 하였습니다. open mind입니다. 세 번째는 사심(私心)이 없는 것입니다. 불순한 동기가 없다는 말입니다. 특히 개인적 욕망과 욕구가 작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의심의 노예가 되지 않는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비 꼬아가지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이나 문제제기가 아니라 우선 걸고 넘어가는 자세 참 못된 심보입니다. 이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서 신사적이고, 고상하고 너그럽고 마음이 트였다라는 말입니다.

 

이 같이 신사적인, 고상하고 너그러운 베뢰아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말씀을, 설교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하면 무엇보다도 기꺼이 말씀을 받아 들였습니다.’ 개역개정에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다.’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 된 마음으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잡으면서 말씀을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이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서 또한 그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 하였습니다(11b). ‘날마다란 듣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 항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상고하였다는 것은 탐색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복음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맞는지 틀리는지, 진리인지 아닌지 따져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적용’(application)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내 삶에, 내 생활 속에 적용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성찰하면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경동교회가 추구하는 신앙적 자세인 지성적 신앙과 일상의 성화가 바로 이것 일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자세로 말씀을 대했기 때문에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였다”(12)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입니다.

 

2018년 제직협의회의 주제가 밖에서 본 경동교회였습니다. 이 주제가 의도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주었던 경동교회를 오늘의 한국교회와 사회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객관적 성찰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깊은 토론과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경동교회가 신사적인 교회, 신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경동교회라고 문제없는 교회일 수는 없을 진데 문제제기의 방식과 또 그것을 해결하는 절차와 과정이 신뢰와 존중, 배려와 뜨거운 인간애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의 바탕은 철저한 성서적 신앙일진데 베뢰아 사람들 같이 신사적인 믿음과 일상으로 모두가 모두의 선의를 존중하는 신앙생활로써 지금 자본의 논리와 소비 지향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 커다란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고 3개월 쯤 지나 시내 광야에 도착하여(19:1) 이곳에서 진을 치고 22개월 20일을 머물렀습니다(10:11). 이 기간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는 가르침 곧 율법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성막을 짓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과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명백한 사실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확인합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길을 떠나 열하루 만에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무렵인 7월 중순 경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각 지파를 대표하는 지도자 한사람씩 열 두 사람을 세워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 두 사람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에 보내면서 그 땅의 실상을 살피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민수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모세에게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지만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신명기에는 그 반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무리를 지어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우리 중 정탐꾼을 선발해서 그 땅을 정탐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어느 길로 가야할지 또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아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먼저 요청합니다.

 

성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해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요청은 매우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정탐의 결과에 따라 어떤 대책과 전략을 마련해 보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계획적이고 준비성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해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 그 배경과 동기는 그리 순수하지 않습니다. 불신앙이 그 저변에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이곳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 오기까지 2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이 광야 길의 험난한 여정과 또 생각지도 않은 많은 시련과 역경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고단하고 지쳤습니다. 그러자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며 트집을 잡고 저항을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수 있는 거야?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리를 지어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우리 중 정탐꾼을 선발해서 그 땅을 정탐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어느 길로 가야할지 또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알아보게 해 주십시오 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먼저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해달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 그 배경에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식어져버린 까닭이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그 약속에 대한 의심의 결과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확신 없음, 두려움, 의심 곧 불신앙이 그 동기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열 두 명의 정탐꾼들을 세워 가나안 땅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살핀 후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세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런데 12명 중 10명의 보고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크고 강하며 그들의 성읍은 요새처럼 튼튼해서 가나안 땅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메뚜기 같이 보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33). 이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울며불며 야단이 났습니다. 심지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합니다. 그때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주님은 그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거역하지 맙시다.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8-9)라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무슨 차이입니까? 12명 중 부정적인 보고를 하는 10명과 다른 2명 곧 갈렙과 여호수아의 보고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10명은 우리스스로 보기에도 그렇거니와 가나안 땅 사람들에 눈에 비치는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이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현실을 보는 생각과 관점의 차이를 넘어 믿음의 차이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요 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12명의 정탐꾼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탐지해보라고 하신 지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을 미리 살펴보고 그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계약이 끝난 후에 새로 이사 갈 집을 미리 찾아가 보는 것은 정착을 위한 살핌이지 다시 협상을 하려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가나안 땅은 협상이나 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갈렙과 여호수아는 믿었고 나머지 10명은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다수가 가나안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지지하며 그들을 따랐습니다. 그 보고에 마음이 움직였고 선동되었습니다. 왜 일까요? 이들 역시 눈앞에 있는 사실만 보았지 그 사실 너머에 있는 진실. 곧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셨다는 것이 그 하나요,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원주민들과 싸워야 한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가나안 땅 원주민들과 싸우신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이곳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 도착하기까지 23개월 동안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셨고 도우셨는지 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하셨는지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으며 삶으로 체험하였습니다. 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사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사실,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뜻과 계획 속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이 바로 진실인데 이 진실을 보지 못합니다. 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닫혔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불가능의 가능성, 비현실적인 것의 현실성을 볼 수 있는 확신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11:1)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경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불가능의 현실, 비현실적인 사실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진실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경동교회 75년의 역사는 이 진실의 역사였고 성도 여러분 또한 이 믿음으로 오늘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믿음은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하는 믿음 그 믿음의 능력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그 불신앙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탐지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장차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게 될 것과 출애굽 세대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20세 이상은 광야 유랑 중 죽게 되고 광야에서 새롭게 태어난 새 세대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 이곳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서 가나안 땅 지금의 팔레스틴 땅 까지 거리는 약 80로 나흘 정도면 들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만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그만치 40년의 세월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의 믿음 없음이 돌고 돌아가야 하는 정말 무의미한 유랑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자니 우선은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별하면서 지금껏 가졌던 야망과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다음은 동족 유대교인들의 해코지가 두려웠으며, 그리고 또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이들 제자들이 고향 갈릴리로 돌아와서 디베랴 바다라고도 하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에 몰두하던 어느 날, 그날은 밤새 수고했지만 한 마리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피곤하여 힘들고 지친 날입니다.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그 분이 예수님인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이었겠지요.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니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너무 무거워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제자 가운데 한 사람 요한이 주님이시다하니까 시몬 베드로가 벗었던 몸에 겉옷을 두른 채로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 배가 멈춰 서있는 곳에서부터 해안까지는 1백 미터 정도이니 배를 끌고 가자면 시간이 걸릴 것이고 해서 헤엄쳐 가는 것이 훨씬 빨리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께로 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헤엄쳐 제일 먼저 예수님께 왔고 다른 제자들은 배를 이끌고 뭍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피곤에 지친 제자들이 뭍으로 올라와서 보니 예수님이 숯불을 피워 놓고 생선을 굽고 계십니다. 그 옆에는 빵도 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주춤대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와라하십니다. 그러면서 아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와서 아침을 먹으라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저 다만 침묵일 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 앞에 선 자신들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탁하시고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뜨거운 믿음의 열정도 비전도 없이 모두가 다 과거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찾아오신 제자들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실패의 자리입니다. 제자들이 정말로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린 채,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하고 있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삶의 의미도, 열정도, 희망도, 기쁨도 없이 그저 국방부 시계처럼 돌아가는 자리입니다. 갈릴리로 돌아오기 얼마 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야말로 믿음의 산 체험을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소중한 체험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고기 잡는 일로 돌아갔습니다.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평생 해왔던 일이고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지금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실패의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의 실패 그것은 밤새 수고해도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을 잃어버린 것, 목적 있는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실패와 패배의 자리에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우리들 실패의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직장과 일터와 경영하는 사업에서 실패하고 손해를 본 그 자리. 인간관계의 실패와 오랜 병고에 낙심으로 가득 차있는 그 자리. 연속되는 시련과 고통으로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가득 찬 그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채 의심과 불순종으로 돌고 도는 광야 유랑을 자초한 실패한 신앙생활의 그 자리에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오늘 코로나 19로 모든 희망과 일상을 빼앗겨버린 그 자리 바로 그 실패의 자리. 그 믿음 없음의 자리. 열정과 확신을 잊어버린 그 자리에 예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와서 아침을 먹으라하시며 우리를 부르십니다.

 

성도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이 무엇일까요? 잘 구운 생선 입니까? 빵 입니까? 아니면 감칠 맛 나는 갈릴리 산 포도주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열정입니다. 감동입니다. 잃어버린 목적입니다. 믿음과 확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돌아와 그저 아무 감동 없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던 제자들에게 저 용광로의 타오르는 불꽃같이 뜨거운 에너지로 충만한 열정과 삶의 감동을 다시 찾아주신 것입니다. 열정이란 자신이 품은 뜻으로 인해 마음이 뜨거워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열정이란 감동과 흥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확신하는 믿음의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이 곳 갈릴리에 오셔서 실패한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와서 아침을 먹으라하시며 우리의 연약함과 무력함까지도 넉넉한 사랑으로 부둥켜안으시며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일깨워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열정도, 감동도, 희망도, 친밀함도 삶의 의미도 또 믿음도 빼앗아 갔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마스크를 쓰고 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슬픕니다. 여기저기 애곡소리가 가슴을 후벼 칩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은 실패했습니다. 밤새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제자들처럼 우리의 탐심과 무분별한 욕망과 또 수많은 지식과 정보로 첨단 과학기술문명을 이루기 위해 자연생태계를 마구잡이로 파괴한 그 오만함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갈릴리로 돌아 왔습니다. 매우 고단하고 피곤하며 지쳐있습니다. 이걸로 끝나는 걸까요?

 

아닙니다. 실패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분명 다가 오셔서 와서 아침을 먹으라하고 말씀 하실 것입니다. 반드시 옵니다. ‘와서 아침을 먹으라하시며 실패한 우리의 믿음과 열정과 희망을 회복 시켜주실 것입니다. 회복입니다. 모든 관계의 회복입니다. 그때 그 날은 새로 시작입니다. ‘다시 시작이 아니고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 날을 희망하며 믿음 잃지 않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 서로 부끄럼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운 마음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절제라 하였으니 그 마음 우리의 믿음 되어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믿어 의심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머리터럭 한 올 까지도 세시는 주님의 능력 앞에서 우리의 짧은 생각과 지식을 자랑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 우리들 마음의 중심을 숨길 수 없음을 두려워하며 겸허한 믿음의 사람과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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