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첫째 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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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진리의 영
성경구절 잠언 8:22-31 / 로마서 5:1-5 / 요한복음서 16:4b-7, 12-15
설교자 임영섭 목사
예배일 2022-06-12
전주 주 성령께 기도하나이다(D. Buxtehude)
찬양1부 거룩하신 주 성령(G. F. Handel)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성령이여, 임하소서(T. Attwood)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주 음성 외에 참 기쁨 없도다(R. Lowry)
후주2부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하나님(L. Smith)
성경본문 잠언 8:22-31
주님께서 일을 시작하시던 그 태초에,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계셨다.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 아직 깊은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물이 가득한 샘이 생기기도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아직 산의 기초가 생기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태어났다. 주님께서 아직 땅도 들도 만들지 않으시고, 세상의 첫 흙덩이도 만들지 않으신 때이다. 주님께서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며, 깊은 바다둘레에 경계선을 그으실 때에도, 내가 거기에 있었다. 주님께서 구름 떠도는 창공을 저 위 높이 달아매시고, 깊은 샘물을 솟구치게 하셨을 때에,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물이 그분의 명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고, 땅의 기초를 세우셨을 때에, 나는 그분 곁에서 창조의 명공이 되어, 날마다 그분을 즐겁게 하여 드리고, 나 또한 그분 앞에서 늘 기뻐 하였다. 그분이 지으신 땅을 즐거워하며, 그분이 지으신 사람들을 내 기쁨으로 삼았다.

로마서 5:1-5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서 있는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될 소망을 품고 자랑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서 16:4b-7, 12-15
“또 내가 이 말을 처음에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서 아무도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없고, 도리어 내가 한 말 때문에 너희 마음에는 슬픔이 가득 찼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아직도,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지금은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진리의 영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서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성경저자가 이 책을 왜 기록하게 되었는지, 그 저술 목적을 직접 밝히고 있는 유일한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서 2030절과 3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결국 요한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는 예수가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이고, 구약에서 말씀하는 여러 약속들을 성취한 구원자이시며, 그분을 믿으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바로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했다는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서를 기록한 목적, 그리고 요한복음서의 중심주제를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복음서들이 모두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는 책이고, 당연히 모든 복음서가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강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것은 요한복음서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서에서는 믿는다, 라는 단어가 무려 98번이나 등장합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믿는다가 마태복음서에는 14번밖에 나오지 않고, 마가복음서에는 11, 심지어 누가복음서에서는 9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보면, 요한복음서가 얼마나 믿음을 강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를 우리가 읽을 때에는, 항상 마음속에 믿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야 하고, 그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요한복음서 16장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믿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렇게 믿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믿는다, 라는 단어가 100번 가까이 나오는데 반해, 정작 믿음이라는 명사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요한복음서가 하나의 관념이나 개념으로서 믿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만 예수를 생각하고 이해하고, 마음으로만 그 예수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무언가 내가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며, 내 삶에 특별한 변화가 생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내가 예수를 믿고 고백하면서 무언가 결단했다면, 믿기 이전과 믿은 이후에 내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어야 하고, 내가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순히 지식이나 감정이나 심리적인 변화뿐 아니라 무언가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물리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서는 이러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신앙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을 한 가지 더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 것, 그리고 우리가 몸으로 믿음을 실천하며 사는 것, 이 모든 것이 내 힘과 지식만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예수조차도 요한복음서 1장에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이래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모든 일을 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예수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신 모든 것이, 예수 스스로 이룬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서 16장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동안 예수를 인도하시고 예수에게 힘을 주셨던 성령께서, 예수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나시지만, 대신 성령이 예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뜻을 알려주시고 예수를 만나게 해주실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예수를 만나려면 예수가 계신 곳으로 가야 했고, 예수의 음성을 들으려면 예수 곁에 있어야 했지만, 이제는 성령의 역사 때문에 그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요한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리하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은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인데,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것도 믿음이고 그 믿음이 가능한 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당시 로마교회를 세운 것은 로마에 살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유대교를 떠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이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루살렘에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성령의 사건을 경험하면서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일어나고, 특별히 당시에 성령이 충만했던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유대인들은 로마로 돌아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교회의 상황은 매우 혼란스럽고 위험했습니다. 로마의 역사가가 기록한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애, 라는 기록을 보면, 당시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고 폭동까지 일어났다고 나옵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성령을 체험하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교회가 아니라 유대교 회당에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회당 전통에 따르면, 회당 예배는 남자 열 명 이상이 모이면 시작되었고, 구약성경 한두 구절을 읽고, 참석한 사람들 중에 누군가 그 말씀에 대해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점을 앞에 나와 사람들에게 말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 다녀온 사람들은 회당에서 읽고 있는 이 구약의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 그 예언이 예수를 통하여 성취되었다고 주장했고, 반대로 그런 주장을 부정하고 반발하는 유대인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이 증폭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래서 나중에는 로마의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칙령을 내려서 유대인들을 로마로부터 추방시킵니다.

그리고 로마교회는 유대인들의 자리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채우면서 그들이 교회의 주축 멤버가 됩니다.

 

이런 이유로, 로마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율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절에서 다시 한번 이 은혜의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소망을 품는 것도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과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그것은 믿음을 통해 참고 인내할 때 결국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에서도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 모든 희망은 우리가 이루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예수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전체에 걸쳐서 율법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구원에 이른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결국 바울도 그것은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를 예수께로 인도하고, 예수의 사랑을 느끼게 하고, 오늘 잠언서에서 말씀하는 태초부터 계셨던 그 지혜의 영이, 오늘 요한복음서에서 말씀하는 그 진리의 영이, 우리로 예수를 바르게 알고 믿고 따르게 해야, 우리는 믿을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어떤 경험을 한다는 것인가?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고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도 우리가 실천하고 경험하기에는 막막한 말씀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해 주시고, 우리가 열심히 찬양하면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고,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닫고 예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험이 실제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그 사건은 어떻게 우리에게 일어나는가?

 

성령의 역사에 대한 체험은 사람들마다 각각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지만, 오늘 성경 본문과 관련하여, 조심스럽지만 제가 경험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가 신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1학년 때 배운 여러 가지 과목들 중에서, 구약통독, 신약통독, 이런 과목들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성경을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통독하면서, 성경의 각 책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이나 구조, 그리고 신학적인 의미를 배우는 그런 과목이었습니다.

 

그 당시 신약통독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였는데, 그 과목에는 매주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음주에 다룰 성경을 미리 읽고, 그 본문 중에 은혜가 되는 말씀을 요약하고, 느낌을 발표하는 그런 과제였습니다.

금요일에 모든 강의시간이 끝나고, 전도사로 사역하던 교회의 금요기도회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숙제를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들어갔습니다.

마침 그 다음주에 공부할 책은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였습니다. 로마서를 묵상하면서 감동받은 말씀을 요약하고 설교를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서관 책상에 앉아,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로마서 11절 맨 앞부분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로마서 11절의 첫 글자, 첫 번째 단어를 읽는 순간부터,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의 첫 번째 단어, “그리스도를 읽는 순간,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두 번째 단어인 예수를 읽을 때에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라는 세 번째 단어를 읽을 때부터는 황홀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성경 말씀 한두 절을 읽고 쓰고 그 감상을 적으면 되는 그 과제를, 로마서 11절부터 로마서 1627절 끝까지, 모두 다 노트에 적고서야 저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성경을 읽은 것도 아니었고, 그동안 살면서 수천 번 수만 번을 읽고 말하고 생각하던 예수 그리스도, 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 라는 글자는, 더 이상 책에 인쇄된 글자가 아니라, 우리가 입으로 흔하게 말하는 그런 예수가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가 되시어 나와 함께하셨습니다.

이라는 단어도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때, 그 한 음절짜리 단어가 저를 쓰러뜨렸고, 부르심을 받았다는 바울의 고백이 제 고백이 되면서,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은 용기와 희망을 불러왔다는 것을 저는 체험했고 지금도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불가피하게 예수를 믿기 위하여 예수를 말과 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때로는 공부도 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예수를 믿는 신앙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교리와 우리의 신앙과 경험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이론과 개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용하는 그 말과 글 속에 갇혀 있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을 보내면서, 이 성령 강림의 절기에 성령의 역사, 진리의 영을 통해 그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 한 구절을 읽더라도 조금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한마디를 드리더라도 골방에 들어가, 조금 더 진실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간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송 한 구절을 부르더라도, 습관적으로 부르는 그런 찬송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말이나 글이 아니라, 교리나 이론이 아니라, 머리나 생각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주님을 오감으로 보고 듣고 만나는 놀라운 역사가, 이 성령강림의 절기에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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