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담임목사
섬기는이
교회조직
예배안내
새교우안내
예전해설
건축소개
갤러리카페
오시는길
예배
주일예배
성경강해
수요예배
절기예배
특별예배
예배음악
주보
상제례식
역사
역사연표
여해 강원용 목사
장공 김재준 목사
교육
성경공부
경동강좌
경동아카데미
유치부
어린이부
중고등부
청년부
선교
선교와 나눔
국제협력
갤러리
사진
영상
공연
전시
도서실
안내
도서검색
게시판
말씀과 기도
추모
링크
여해 강원용 목사 사이버아카이브
경동어린이집
선한이웃클리닉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서울노회
NCCK
WCC
게시판
청년부
주보
게시판
앨범
일정
청년부
주보
게시판
앨범
일정
>
교육
>
청년부
>
게시판
>
교육
>
청년부
>
게시판
<p>* 청년부 웹진 <1330>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allears.stibee.com)</p> <p> </p> <p class="each-img"><img alt="1735259913995.jpg" src="/UserData/kdchurchhp/files/84123/140106/MTczNTI1OTkxMzk5NS5qcGdkaW1vZGVfNzU2MDUwNF9lbmMc.jpg" title="1735259913995.jpg" /></p> <p> </p> <p>가여운 것들은 2023년에 개봉한 영화로 국내에서는 2024년에 개봉을 하였다. 원작은 스코틀랜드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가 쓴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 영화는 어느 과학자에 의해 탄생한 아이의 두뇌를 가진 성인 여성 ‘벨라 백스터(이하 벨라)’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한 마디로 ‘여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주인공 벨라는 자신을 만든 과학자 ‘갓윈 벡스터(이하 갓윈)’를 ‘신(god)’이라 부르며 그를 창조주이자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 어느날 갓윈은 벨라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저택에 자신의 조수 맥스를 들인다. 그렇게 맥스와 함께 생활하게된 벨라. 평소처럼 놀던 도중 벨라는 세계지도를 보며 저택 밖의 세상을 궁금해 한다. 하지만 갓윈은 저택 밖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이곳 저택을 벨라를 위해 완벽한 세상으로 창조했으니 나갈 수 없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벨라는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미지의 여성인 벨라를 무척이나 궁금해 하는 변호사 ‘던컨’이 저택으로 접근한다. 물론 좋은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벨라의 아름다운 외모에 이끌려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는 벨라에게 이곳을 떠나 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벨라는 ‘신(갓윈)’께서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하자, 던컨은 “나는 벨라 당신에게 묻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흔들리는 벨라의 마음. 결국 벨라는 갓윈에게 허락을 구하고 던컨과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p> <p> </p> <p>여기까지가 영화의 초반부 내용이다. 벨라가 자신을 만든 과학자를 ‘신’으로 부르는 것과 저택을 떠나 모험을 하는 과정이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에덴 동산을 떠나게 되는 하와의 모습같다. 아이의 머리로 새로운 정신과 영혼이 주입된 벨라처럼, 아동 청소년기 시절의 신앙은 부모가 물려주는 신앙으로 부모님따라 교회에 이끌려 가는 모습같다. 이 시기는 부모가 곧 하나님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잘 순응하며 매 주일마다 교회에 갔다. 하지만, 일요일이라는 시간은 늘 유혹이 넘치는 시간이다. 조금씩 성장하면서 가족 바깥으로 관계를 확장해 나가는 시기가 되면, 항상 재밌는 일은 주일에 생기게 된다. 그리고 애초에 나의 선택이 아니었던 신앙은 성인이 되면 부모의 간섭없이 선택할 수 있다는 의지로 신앙을 포기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부모와 멀어지는 순간이 곧 하나님과 멀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을 떠나도 하나님은 늘 지켜봤듯이 떠나는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다. 설령 그것이 신앙을 져버리는 일이더라도 부모님의 신앙이 아닌 내 안의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던컨이 신이 아닌 벨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처럼 자아가 생기는 것은 나에 대한 질문과 타자화와 관련되어있다. </p> <p> </p> <p>영화 중반부 벨라는 던컨을 따라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등 다양한 곳을 여행하게 된다. 저택에서 벗어나 여행을 함으로써 세상에 온갖 첫 경험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이 처음인 벨라에게 세상은 재밌고 흥미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나 아이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벨라는 사회화가 안 되어 있어서 파트너인 던컨 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당혹감을 준다. 매 순간 실수와 사회의 불문율을 어기는 벨라를 보며 던컨은 인내심에 한계에 다다른다. 더이상 리스본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던컨은 벨라를 데리고 리스본을 떠나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로 향한다. 새로운 환경, 벨라는 배에서 던컨 이외의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이전에 던컨은 벨라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차단했기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호기심을 가진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벨라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깊은 감정을 느끼며 성숙해 진다. 가령 알렉산드리아에서 두 눈으로 빈부격차를 보며 스스로 내재되어 있던 연민을 느끼며 고통스러워 하게 된다. 그러고는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겠다면서 던컨이 도박으로 딴 돈을 줄 계획을 세우지만, 순진한 벨라는 사기를 당하며 빈털털이가 된다. 결국 파리로 가는 배에서 빈털털이가 된 벨라와 던컨. 어쩔 줄 몰라하는 던컨, 그러나 벨라는 이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매춘이라는 것을 깨달은 벨라는 사창가에서 매춘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습에 실망한 던컨은 벨라를 떠나게 되고 벨라는 매춘부로써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대학에 다니며 공부를 하며 엄청난 적응력으로 파리에 정착하며 살게 된다. 그렇게 일을 하던 도중 그를 애타게 찾던 맥스가 벨라를 만나 갓윈이 위독 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을 들은 벨라는 곧장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p> <p> </p> <p>영화 중반부는 벨라의 본격적인 좌충우돌 성장기를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는 새로운 막을 알려주는 장치로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아기가 색을 인지 못하는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가 되면 점점 색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벨라 또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하지만 벨라에게 터지듯 뿜어 나오는 새로움 때문에 자신의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실수를 남발한다. 그런 벨라의 모습은 함께하는 이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하지만 당연한 모습이다. 사회를 경험하지 못 한 사람들은 고의든 아니든 사회적 규범을 벗어난 행동을 많이하게 된다. 그런 실수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사회를 점점 배워 나간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부모의 울타리는 그런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똑같이 실수를 용납하지 않지만 결은 정반대이다. 사회는 사회적 일탈에 대해 ‘악(惡)’으로 규정하고 교정을 강요하는 반면, 부모의 울타리는 상처받는 자식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사회적 일탈이라는 상황 자체를 경험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이 두 가지 예시는 모두 극단적이지만 하나는 나와 다름에 대한 혐오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서로의 동질감과 사랑으로 부터 나온다. 하지만 실수를 경험하지 못 한 인간은 성장할 기회를 받지 못 한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그대로 있었으면, 아브라함도 예수님도 교회도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기독교의 역사는 바빌론부터 시작해 출애굽 그리고 로마시대까지 시련과 박해의 역사가 계속된다. 어쩌면 끊임없는 시련은 기독교의 운명이다. 거대한 권력과 타인의 적개심이 기독교를 위협했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극복했다. 인류 역사에서 시련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더욱더 많을 것이다.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공감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기독교가 일반적인 원시 종교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일반적인 원시 종교는 신을 향한 요구만을 원한다. 가령 비를 내려주시기를, 사냥이 잘 되기를, 농사가 잘 되기를 빈다. 물론 우리 또한 하나님에게 소망을 비는 기도가 더 많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기복신앙이 중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한 차원 높은 성장의 기회를 준다. 이것이 기독교가 신을 자연이나 현상에 기대어 타자화하는 것이 아닌 나와 함께하는 신, 즉 내 안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저택을 떠난 벨라의 성장기를 우리의 신앙에 비추어 보면, 신을 부모에 빗대어 끊임없이 요구하는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진정 나의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p> <p> </p> <p>벨라는 자신을 만든 창조주 갓윈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저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저택으로 돌아온 벨라는 갓윈에게 진실을 듣는다. 바로 벨라가 자신이 임신한 아이의 뇌로 살아간다는 것. 이 사실을 안 벨라는 크게 실망하지만, 처음으로 갓윈에게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질문한다. 갓윈은 벨라에게 아이의 뇌를 가지기 전 다리에서 자살을 한 이전의 벨라의 모습을 이야기 해주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말한다. 이어 갓윈은 “벨라 백스터는 너 스스로 만들어 낸 거야”라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들은 벨라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인 의사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갓윈의 조수였던 맥스에게 청혼을 받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방해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벨라의 원래 남편인 알피가 등장해 벨라에게 같이 돌아가자고 얘기한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처음 본 알피를 따라가는 벨라. 벨라는 알피의 집으로 따라 들어간다. 하지만 알피의 괴팍한 성격과 이기적인 모습은 벨라 자신이 당신을 왜 떠났는지 알겠다며 알피에게 말한다. 그리고 그녀가 몸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알피는 벨라의 음핵을 자르겠다며 벨라를 자신의 소유물인 마냥 취급한다. 더이상 못 참는 벨라는 결국 알피를 해치게 된다.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알피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벨라는 결국 알피를 데려와 치료를 한다. 물론 다시 살리면 복수를 할 것이기에 알피의 머리에는 토끼 뇌를 넣게 한다. 그리고 영화는 대저택 안에 벨라가 만든 작은 세상과 함께 막을 올린다.</p> <p> </p> <p>벨라가 다시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옴으로써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 저택에 있는 이들에게 실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바깥 세상에서 수많은 경험을 겪은 벨라는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갓윈에게 도리어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에 응답을 듣고 확신을 가진다. 이 모습은 마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음성을 아직까지 들은 적은 없다. 특히 갓윈이 벨라에게 “벨라 백스터는 너 스스로 만들어 낸 거야”라고 말했을 때, 나도 모르게 벨라에게 대입하여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부분인 벨라가 알피에게 가는 전개는 영화를 2회차 봤을 때도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자신에 대한 질문에서 해소되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벨라 백스터’ 이전의 삶. 자신이 창조되기 전에 대한 궁금증은 태초의 인간이 어긴 죄인 원죄에 대한 궁금증으로 해석된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원죄때문에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며 살아간다. 이를 회개한다고 말을 한다. 다시 알피에게 돌아간 것에 대해 얘기하자면, 던컨에게 이끌린 것은 단지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따라갔다. 하지만 알피에게 간 것은 자신이 마주하기 싫은 진실, 과거의 나의 행동으로 현재 고통받는 현실을 해결하러가기 위해 자신의 의지에 의해 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도 과거의 내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그런 과거의 내가 싫어 우리는 끊임없이 회피한다. 마주보는 일은 나에게 수치심과 분노를 주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 우리의 모습을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회개는 그런 나를 보며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시련이 외부의 압박을 이겨내게 해주는 내 안의 하나님, 성령의 힘이라면 신앙고백은 이 모든 시련이 내가 만들었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이다. 갓윈 박사가 벨라에게 해 준 “벨라 백스터는 너 스스로 만들어 낸 거야”라고 말한 것은 시련을 이겨낸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는 말이기도 하지만, 모든 죄는 내가 자초하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모든 죄에 대한 범지구적인 공감을 뜻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신앙고백은 우리가 과거의 나를 마주함으로써 자아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확장해 나아간다. </p> <p> </p> <p>이 영화를 실제로 보게 되면 굉장히 거칠고 자극적이어서 어떤 분들은 보기 어려운 영화일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 인류의 성장에 대한 비유를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 가여운 것들에 대한 신앙적 고백과 해석이었습니다.</p>
예약 등록일
예약 등록 시간
시를 선택해주세요.
00시
01시
02시
03시
04시
05시
06시
07시
08시
09시
10시
11시
12시
13시
14시
15시
16시
17시
18시
19시
20시
21시
22시
23시
분을 선택해주세요.
00분
01분
02분
03분
04분
05분
06분
07분
08분
09분
10분
11분
12분
13분
14분
15분
16분
17분
18분
19분
20분
21분
22분
23분
24분
25분
26분
27분
28분
29분
30분
31분
32분
33분
34분
35분
36분
37분
38분
39분
40분
41분
42분
43분
44분
45분
46분
47분
48분
49분
50분
51분
52분
53분
54분
55분
56분
57분
58분
59분
공지
예약
비밀
(작성자 본인과 관리자만 볼 수 있습니다.)
제목 색상
제목 크기
제목 굵게
1735259913995.jpg [230.17KB]
업로드
삽입하기
{ "target" : "document", "documentU" : "140106", "moduleU" : "84123", "compress" : 1, "__RequestVerificationToken":"AQDzCPK1d961e5w_K0Rh7XOqOBadDJ5HwSUp1zadA4E8U1vxT-bsa84mFY66ovZMmucLwyF7s4e5vBw6KyR28ekoVWMXKd3kKcLetaUFntI1" }
삭제
리스트
저장하기
취소
×
게시판 - 경동교회
소개
담임목사
섬기는이
교회조직
예배안내
새교우안내
예전해설
건축소개
갤러리카페
오시는길
예배
주일예배
성경강해
수요예배
절기예배
특별예배
예배음악
주보
상제례식
역사
역사연표
여해 강원용 목사
장공 김재준 목사
교육
성경공부
경동강좌
경동아카데미
유치부
어린이부
중고등부
청년부
선교
선교와 나눔
국제협력
갤러리
사진
영상
공연
전시
도서실
안내
도서검색
게시판
말씀과 기도
추모
링크
여해 강원용 목사 사이버아카이브
경동어린이집
선한이웃클리닉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서울노회
NCCK
WCC
게시판
청년부
주보
게시판
앨범
일정
청년부
주보
게시판
앨범
일정
>
교육
>
청년부
>
게시판
>
교육
>
청년부
>
게시판
로그인
자동로그인을 체크하시면 브라우저를 종료해도, 로그인이 유지됩니다.
개인이 쓰는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기를 권장합니다.
로그인
자동 로그인
|
회원가입
|
회원정보 찾기
홈
소개
담임목사
- 담임목사
- 담임목사 설교
섬기는이
- 교역자
- 장로
- 직원
교회조직
- 교회의결기관
- 위원회 및 기관
- 신도회
예배안내
새교우안내
예전해설
건축소개
- 본당건축소개
- 건축자료
갤러리카페
오시는길
예배
주일예배
성경강해
수요예배
절기예배
- 사순절예배
- 부활절예배
- 추수감사절예배
- 성탄절예배
특별예배
- 에큐메니칼 교환예배
- 창립기념주일예배
예배음악
- 1부성가대찬양
- 2부성가대찬양
- 오르간전주
- 오르간후주
주보
상제례식
- 상제례의 신학적 이해
- 상제례의 의식
- 상제례에 관한 문답
역사
역사연표
여해 강원용 목사
- 여해 강원용 목사
장공 김재준 목사
- 장공 김재준 목사
교육
성경공부
경동강좌
- 명강좌
- 성서강좌
- 교양강좌
- 원로목사강좌
경동아카데미
- 혼인학교
- 죽음학교
유치부
- 유치부
- 게시판
어린이부
- 어린이부
- 게시판
중고등부
- 중고등부
- 게시판
청년부
- 청년부
- 주보
- 게시판
- 앨범
- 일정
선교
선교와 나눔
- 선교와 나눔
- 국제 협력
국제협력
갤러리
사진
영상
공연
전시
도서실
안내
도서검색
게시판
말씀과 기도
추모
- 추모관
링크
여해 강원용 목사 사이버아카이브
경동어린이집
선한이웃클리닉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서울노회
NCCK
WCC
전체 메뉴 보기
×
홈
소개
- 담임목사
- 담임목사
- 담임목사 설교
- 섬기는이
- 교역자
- 장로
- 직원
- 교회조직
- 교회의결기관
- 위원회 및 기관
- 신도회
- 예배안내
- 새교우안내
- 예전해설
- 건축소개
- 본당건축소개
- 건축자료
- 갤러리카페
- 오시는길
예배
- 주일예배
- 성경강해
- 수요예배
- 절기예배
- 사순절예배
- 부활절예배
- 추수감사절예배
- 성탄절예배
- 특별예배
- 에큐메니칼 교환예배
- 창립기념주일예배
- 예배음악
- 1부성가대찬양
- 2부성가대찬양
- 오르간전주
- 오르간후주
- 주보
- 상제례식
- 상제례의 신학적 이해
- 상제례의 의식
- 상제례에 관한 문답
역사
- 역사연표
- 여해 강원용 목사
- 여해 강원용 목사
- 장공 김재준 목사
- 장공 김재준 목사
교육
- 성경공부
- 경동강좌
- 명강좌
- 성서강좌
- 교양강좌
- 원로목사강좌
- 경동아카데미
- 혼인학교
- 죽음학교
- 유치부
- 유치부
- 게시판
- 어린이부
- 어린이부
- 게시판
- 중고등부
- 중고등부
- 게시판
- 청년부
- 청년부
- 주보
- 게시판
- 앨범
- 일정
선교
- 선교와 나눔
- 선교와 나눔
- 국제 협력
- 국제협력
갤러리
- 사진
- 영상
- 공연
- 전시
도서실
- 안내
- 도서검색
게시판
- 말씀과 기도
- 추모
- 추모관
링크
- 여해 강원용 목사 사이버아카이브
- 경동어린이집
- 선한이웃클리닉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 서울노회
- NCCK
- WCC
홈
소개
담임목사
- 담임목사
- 담임목사 설교
섬기는이
- 교역자
- 장로
- 직원
교회조직
- 교회의결기관
- 위원회 및 기관
- 신도회
예배안내
새교우안내
예전해설
건축소개
- 본당건축소개
- 건축자료
갤러리카페
오시는길
예배
주일예배
성경강해
수요예배
절기예배
- 사순절예배
- 부활절예배
- 추수감사절예배
- 성탄절예배
특별예배
- 에큐메니칼 교환예배
- 창립기념주일예배
예배음악
- 1부성가대찬양
- 2부성가대찬양
- 오르간전주
- 오르간후주
주보
상제례식
- 상제례의 신학적 이해
- 상제례의 의식
- 상제례에 관한 문답
역사
역사연표
여해 강원용 목사
- 여해 강원용 목사
장공 김재준 목사
- 장공 김재준 목사
교육
성경공부
경동강좌
- 명강좌
- 성서강좌
- 교양강좌
- 원로목사강좌
경동아카데미
- 혼인학교
- 죽음학교
유치부
- 유치부
- 게시판
어린이부
- 어린이부
- 게시판
중고등부
- 중고등부
- 게시판
청년부
- 청년부
- 주보
- 게시판
- 앨범
- 일정
선교
선교와 나눔
- 선교와 나눔
- 국제 협력
국제협력
갤러리
사진
영상
공연
전시
도서실
안내
도서검색
게시판
말씀과 기도
추모
- 추모관
링크
여해 강원용 목사 사이버아카이브
경동어린이집
선한이웃클리닉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서울노회
NCCK
WCC
전체 메뉴 보기
×
홈
소개
- 담임목사
- 담임목사
- 담임목사 설교
- 섬기는이
- 교역자
- 장로
- 직원
- 교회조직
- 교회의결기관
- 위원회 및 기관
- 신도회
- 예배안내
- 새교우안내
- 예전해설
- 건축소개
- 본당건축소개
- 건축자료
- 갤러리카페
- 오시는길
예배
- 주일예배
- 성경강해
- 수요예배
- 절기예배
- 사순절예배
- 부활절예배
- 추수감사절예배
- 성탄절예배
- 특별예배
- 에큐메니칼 교환예배
- 창립기념주일예배
- 예배음악
- 1부성가대찬양
- 2부성가대찬양
- 오르간전주
- 오르간후주
- 주보
- 상제례식
- 상제례의 신학적 이해
- 상제례의 의식
- 상제례에 관한 문답
역사
- 역사연표
- 여해 강원용 목사
- 여해 강원용 목사
- 장공 김재준 목사
- 장공 김재준 목사
교육
- 성경공부
- 경동강좌
- 명강좌
- 성서강좌
- 교양강좌
- 원로목사강좌
- 경동아카데미
- 혼인학교
- 죽음학교
- 유치부
- 유치부
- 게시판
- 어린이부
- 어린이부
- 게시판
- 중고등부
- 중고등부
- 게시판
- 청년부
- 청년부
- 주보
- 게시판
- 앨범
- 일정
선교
- 선교와 나눔
- 선교와 나눔
- 국제 협력
- 국제협력
갤러리
- 사진
- 영상
- 공연
- 전시
도서실
- 안내
- 도서검색
게시판
- 말씀과 기도
- 추모
- 추모관
링크
- 여해 강원용 목사 사이버아카이브
- 경동어린이집
- 선한이웃클리닉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 서울노회
- NCCK
- WC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