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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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마리아-부활하신 주님의 첫 목격자
성경구절 사도행전 10:34-36/ 고린도전서 15:3-8/ 요한복음서 20:11-16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21-04-04
예배 주일
전주 주가 부활하셨다. 할렐루야(G. P. Palestrina)
찬양1부 살아계신 주. 특주: Alex Volkov (trumpt)
지휘자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살아계신 주. 특주: Alex Volkov (trumpt)
지휘자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주 오늘 다시 사셨도다(arr. D. Bish)
후주2부 승리하셨도다 알렐루야(G. Young)
성경본문 사도행전 10:34-36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3-8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요한복음서 20:11-16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다른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자여,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그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가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주일 새벽,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합니다. 마태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두 명의 여자 이름을(28,1), 마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세 명의 여자 이름을(16,1), 누가복음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 세 명의 여자 이름과 함께 다른 여자들’(24,10)도 언급하는데, 요한복음은 단 한 사람, 막달라 사람 마리아의 이름만 언급합니다.

 

주목할 것은 모든 복음서들이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막달라라는 성은 그녀가 가버나움 남서쪽 7마일,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막달라 출신임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에서 악령과 질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고쳐주셨을 때, 일곱 귀신들이 떨어져 나간 여자였습니다(8,2).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멀찍이 지켜보고 있었고(27,56),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어귀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 예수님의 무덤을 도굴했다고 생각하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고 말합니다. 놀란 제자들이 달려가 무덤을 살펴봤는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과 몸을 쌌던 삼베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말씀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20,10).

 

믿음이 허상으로 드러나고, 소망이 절망으로 끝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들이 출발하기 이전의 장소로 되돌아가는 것이지요. ‘혹시역시로 끝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누군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생각한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었습니다. 그러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앉아 있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여자여, 왜 우느냐?’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 예수께서 서 계셨지만, 마리아는 그 분이 예수님인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묻는 사람이 동산지기인줄 생각한 막달라 마리아는 여보세요, 당신이 그를 옮겨 놓았거든, 어디에다 두었는지를 내게 말 해 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 가겠습니다.’고 말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같은 분이라면 마리아가 몰라볼 리 없지요. 그런데 동산지기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 죽으신 육체와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지 보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이나 믿음으로 이끌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요? 그렇지요.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11,1)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습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에 놀란 마리아,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부른 칭호이기도 하지만, 보통명사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고유명사이지요.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보편적 이념이나 유령과 같은 모습으로 인간 일반을 만나지 않으십니다. 마리아는 여자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고유한 인간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구체적인 인간의 현실적 삶 한 가운데로 들어오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과 추상적인 존재로 만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 저자는 주님을 선한 목자에 빗대어, ‘선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알고, 양들도 목자를 압니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갑니다.’(10,3)고 말한 것이지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공동체는 선한 목자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을 듣는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한 사람, 한 사람, 그 이름을 불러 제자를 삼으시고,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면서, 아버지께서 그를 보내신 것 같이,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20,21-22).

 

그렇습니다. 부활신앙은 사후 세계에 대한 개인적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게 부활신앙은 죽은 후 천당에 가느냐, 지옥에 가느냐, 부활은 시체의 소생이냐, 불멸하는 영혼의 승천이냐를 설명하는 신학적이고 추상적인 의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관념이나 교리로서의 부활론은 예수님의 부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죽지 않고서는 부활이 있을 수 없고, 죽어야 부활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 때문에 죽어본 적이 없는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까지 참아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부활은 단지 관념적 교리이거나, 불멸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부활은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와 함께 한 고난 속에서 희망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히 단언하건데,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고전 15,31)라고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제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하여라.’고 말씀하셨고,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하였다고 합니다(20,17-18).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의 증언은 공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었던 여자를, 그의 부활사건의 최초 증인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의 첫 증인으로 병으로 고통 받고, 귀신들려서 사람들의 냉대와 차별, 경멸과 배척 속에서 살아있는 것 같으나 사실은 죽은 한 여인을 선택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제 이전의 제자들을 형제들이라고 칭하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 그에게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제 예수님의 형제자매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보냄을 받은 것처럼, 보냄을 받을 것이며, 아들이 가졌던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질 것입니다(20,23).

 

부활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부수고, 부활하셨음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빈 무덤 속에서 부르셨듯이, 죽음 가운데 있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성령과 죄 사함의 권세를 주시고, 세상으로 보내시는 날이기도 하지요. 부활절은 멸망 받을 마지막 원수, 죽음을 이기고(고전 15,26), 만민의 주님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는 날입니다(10,36).

그러므로 평화가 위협받는 곳, 생명이 파괴되는 곳, 어디에서나 평화를 만들고, 생명을 꽃피우는 것이 부활신앙으로 보냄 받은 예수님의 형제자매들의 부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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