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셋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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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함께 드리는 감사
성경구절 신명기 26:4-11 / 빌립보서 4:4-9 / 요한복음서 6:30-35
설교자 임영섭 목사
예배일 2022-09-18
전주 주께 감사드리나이다(G. F. Handel)
찬양1부 감사드려(S. Dickson)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감사하는 성도여(P. Davis)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다 감사드리자(arr. S. Vaan)
후주2부 다 감사드리자(arr. S. Vaan)
성경본문 신명기 26:4-11
제사장이 당신들의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다음과 같이 아뢰십시오.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몸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셔서,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게 주신 땅의 첫 열매를 내가 여기에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것을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놓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레위 사람과, 당신들 가운데서 사는 외국 사람과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안에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십시오.

빌립보서 4:4-9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6:30-35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 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함께 드리는 감사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여러 가지 덕목들 중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감사는 몇 가지 특징들이 갖고 있는데, 가장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서 6장을 보면, 사람들은 육신의 빵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빵으로 그들의 관심과 시야를 넓혀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 베풀어주시는 일용한 양식, 하루하루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드리는 궁극적인 감사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곡식과 과일이 자라고 열매 맺는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관하시며, 예수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은 관념적인 것만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인 사건과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오늘 신명기에서 모세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출애굽의 해방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죽어서 얻는 영원한 생명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감사할 수 있는 증거는, 바로 이 역사와 현실 속에서 우리를 인격적으로 만나주시고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신 구체적인 사건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두 귀로 들었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두 눈으로 보았으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를 직접 맛보면서, 역사 속에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감사도 마음이나 입으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빌립보서에 나오는 초대교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했다는 것을 마음으로만 믿고 감사한 게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온갖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들이 오늘 빌립보서에서 항상 기뻐하고 염려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눈과 귀와 피부로 체험하던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그 하나님을 현실 속에서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시지만 우리의 배를 채울 수 있는 만나도 내려주십니다.

이에 맞추어 우리의 감사도 초월적이지만 현실적이어야 하고, 우주적이지만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작은 곡식의 낟알들을 보면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오늘을 살아갈 곡식과 과일을 나의 두 손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다음으로 성경의 감사는 모두 함께 드리는 감사였습니다. 오늘 신명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경험한 구원도 집단적인 것이었고, 그들이 드려야 하는 감사도 공동체의 감사였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나 개인에게 내려주시는 복, 나 혼자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이런 것이 강조되지 않습니다.

주의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처럼, 성경의 신앙, 성경의 감사는 우리가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빌립보서 말씀은 어떤 개인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바울서신은 초대교회 공동체에게 보낸 편지였고, 모두 함께 읽고 함께 은혜를 나누며 실천해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빌립보서를 보면, 바울의 편지를 받는 사람은 한 사람 개인이지만, 바울은 이 편지의 수신자들을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쓰면서 마음에 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는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쁨과 감사와 간구입니다.

따라서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입니다.

풍성한 열매에 감사하는 것도 나에게만 허락하신 열매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기쁨과 행복과 감사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 한가위 명절을 보내고,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미국의 명절이 아니라 한가위에 추수감사주일을 지킨다면, 보다 한국적인 축제를 준비하고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해오고 있습니다.

비록 올해에도 코로나 시대가 끝나지 않아, 별다른 행사를 치르지 못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보다 한국적인 추수감사주일, 우리 고유의 감사의 축제를 열 수 있을까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몇 주일 동안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고, 혹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배울 만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그중에서 1902년부터 1935년 사이의 우리 한국교회 초기의 추수감사절에 관한 기록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추수감사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90211월에 발간된 신학월보, 라는 잡지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린 것은 1902105일 경기도 여주의 큰고을교회 감리교회에서 드린 예배였는데, 당시에는 추수감사주일이 아니라 명칭이 곡식거둔 감사예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신학월보에 당시 예배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라, 제가 일부분을 발췌해서 읽어보겠습니다.

이날 예배시에 문전도사 경호씨께서 전도하셨는데 성경 여러 곳을 보았어도 그중에 묵시록 712절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문제로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겠다 하고 전도를 하셨는데, 절차 있고 규모 있게 하심으로 모든 교우들이 엄숙한 모양으로 고요이 듣다가, 우리가 뉘게 감사를 드리겠느냐, 하나님이냐 혹 마귀냐 할 때 모든 교우들이 다 두려운 모양이다가 우리는 지금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세 하고 영광경 찬송하니 하늘로서 화답하시는 듯하며 아래로 모든 교우들이 기뻐하였고 또 예배하는 중 매우 재미를 많이 보았사오며 즐겁게 지내였나이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120년 전에 이 땅에서 처음으로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드렸던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은 처음에는 곡식거둔 감사예배였습니다. 그러다가 1908년에 장로교에서는 처음으로 감은절이라는 이름으로 지켰고, 그 후로 감사일, 추수감사일, 이런 명칭이 사용되다가 1912년부터 추수감사절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기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저는 우연히 매우 놀랄 만한 기록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한국적인 추수감사절을 예배나 행사에서 찾고 있었지만, 이 기록들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우리 선조들이 그 뜻을 얼마나 제대로 깨닫고 실천했는지, 그것을 알려주는 감동적인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추수감사절에 드린 예물들을 자신을 위해서, 내 교회를 위해서, 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선교를 위해서 이웃을 돕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한두 교회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기록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교회들, 심지어 교단 전체가 이 추수감사절에 모인 헌금을 국내외 선교를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13년의 예수교장로회조선총회 기록을 보면, 교단에 속한 각 교회들이 헌금을 전도국을 통해 선교에 사용하기 위해서 보냈다고 나옵니다.

1922년 기독신보를 보면, 감사절에 모은 돈과 곡식이 조선미감리교회 내외국선교회를 통해 선교에 사용되었다는 글도 나옵니다.

그 다음해 1923년 기독신보를 보면, 교회에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두 가지 목적이 나오는데, 하나는 만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이 날에 드린 돈과 곡식과 열매를 모아 남북 만주, 서북간도, 일본 동경, 오사카 등지의 선교사업에 충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나옵니다.

 

1926년 기록에도, 추수감사절 헌금을 교회 내부에서 소비하지 않고 장로교회는 중국 산동선교를 위해서, 감리교회는 만주동포 전도를 위해 사용했다고 소개합니다.

1927년 자료를 보면, 이렇게 10여 년 동안 감사절 헌금으로 만주 선교비로만 쓴 비용이 나오는데 그것이 당시 돈으로 325백 원, 지금 물가로 대략 계산해도 작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일반 교회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기독교 학교와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29년 기독신보를 보면, 평양장로교회에 속한 중등 이상의 각 학교 학생들이 감사예배로 모였던 기사가 나옵니다.

19291114일 오전 10시 서문밖에서 예배를 드렸고, 당일에 모인 학생 숫자가 일천삼백 명이나 되었으며, 그들이 드린 헌금이 이백사십육완 육십이 전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헌금을 모두 총회로 보내 외지의 전도사업, 선교에 사용되었다고 나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당시는 일제강점기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의해서 탄압을 받고 있었고, 그 당시의 식민지 생활의 궁핍함과 어려움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초대교회 교인들은 추수한 많은 것을 일제에 수탈을 당하면서도, 하나님께 정성껏 감사예물을 드리고, 그 예물을 다시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용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드리는 감사, 함께 누리는 감사, 이것이 바로 한국적인 추수감사절의 전통이요, 바로 오늘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기독교의 감사입니다.

 

오늘 신명기를 보면, 감사로 드리는 그 예물을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하나님께 드리며, 그 예물을 몇몇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한 후에,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가운데 살고 있는 나그네들과 함께 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추수감사절은, 일제강점기에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드렸던 감사와 찬송은, 바로 모두 함께 드리는 감사, 모두 함께 누리는 감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풍성한 곡식과 과일과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리는 감사는 나 혼자만의 감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드리는 감사, 우리 모두가 이웃과 함께 누리는 감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우리가 얻은 열매를 이웃과 나누며 함께 기뻐하는 한국적인 추수감사절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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