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절 넷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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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지식과 사랑
성경구절 신명기 18:15-20/ 고린도전서 8:1-3/ 마가복음서 1:21-28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21-01-31
전주 주여, 우리에게 힘을 주소서(J. A. Guilain)
찬양1부 오 신실하신 주(W. M. Runyan) 특송: 정록기 집사
지휘자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지휘자
반주자
후주1부 주 하나님, 그 거룩하신 이름 늘 높이네(Leoni)
후주2부
성경본문 신명기 18:15-20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의 동족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니, 당신들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당신들이 호렙 산에서 총회를 가진 날에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청한 일입니다. 그 때에 당신들이 말하기를 '주 우리 하나님의 소리를 다시는 듣지 않게 하여 주시며, 무서운 큰 불도 보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죽을까 두렵습니다' 하였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한 말이 옳다. 나는 그들의 동족 가운데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는,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다 일러줄 것이다. 그가 내 이름으로 말할 때에,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벌을 줄 것이다. 또 내가 말하라고 하지 않은 것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1-3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십니다.

마가복음서 1:21-28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 때에 회당에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입니다." 예수께서 그를 꾸짖어 말씀하셨다.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라." 그러자 악한 귀신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서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이게 어찌된 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그가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면서 서로 물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 신명기는 이른바 모세 5의 마지막 책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사실 모세가 저자가 아니고, 이 다섯 권의 책은 주전 400년경에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 2세기 이후부터 모세 5으로 불려왔습니다.

 

그 가운데 신명기는 내용적으로 모세 시대의 끝을 보여주면서, 여호수아 시대의 시작을 열고 있습니다. 즉 요단 동편 세대가 광야 시대를 청산하고,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올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출애굽 후 힘들었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농경문화 시대의 물질적 번영과 거기에 따른 각종 시험과 유혹의 시대가 다가옴을 예고합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거대한 전환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지요.

 

신명기에는 다양한 율법들이 실려 있는 까닭에, 사람들은 신명기가 신의 명령이 들어 있는 책’(神命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명기(申命記)널리 퍼친다라는 납신’() 자를 이용하여, ‘옮겨 적은 명령’(17,18)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뜻의 제목은 칠십인 역이 책의 제목을 신명기 1718절에 있는 말씀,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이 율법책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두 번 째 율법으로 해석하여, ‘도이테로-노모스’(deutero-nomos)라고 표기한 데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전체가 율법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신앙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승하기 위한 종교교육(6,2-9), 예배(14,1-16,17), 왕과 제사장과 예언자의 과제(17-18), 결혼과 가족(21,15-21 ), 과부와 고아와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특별한 관심(24,17-22), 안식일에 집짐승들도 쉬게 하거나(5,14), 길을 잃고, 상처받고, 배고픈 동물들을 돌보고(22,1-4; 25,4), 새끼 낳은 어미 새를 보호하고(22,6-7), 도시가 포위되었을 때 과실나무를 보호하는 것(20,19-20), 땅을 쉬게 하는 것 등이 실려 있는데, 신명기 법정신이 생태계를 포괄한다는 점이 놀랍고, 바로 이런 점이 다른 고대 근동국가들의 법령과 확연히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것은 예언자에 대한 규정입니다. 신명기에 의하면,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 주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은 사람으로, 주님이 명한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일러주어야 합니다.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은 벌을 주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하라고 하지 않은 것을 제 마음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는 죽임을 당한다.’(18,18-20)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왕과 제사장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운 인물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일이 아니기에, 예언자는 자기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을 백성에게 일러주어야 합니다. 그 주님의 말씀이 백성이 듣기 좋은 말이든, 듣기 싫은 말이든 개의치 않아야 합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또한 주님의 말씀 선포가 예언자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선포에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예언자는 사람이 듣기 좋아하건 싫어하건, 설령 자기에게 피해를 주는 내용일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당시 가나안 정착과정에서 이스라엘은 본토민들의 낯선 종교적 행위와 만났습니다. 자식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사람, 점쟁이와 복술가와 요술객과 무당과 주문을 외우는 사람과 귀신을 불러 물어보는 사람, 박수와 혼백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18,10-11)

 

사실 이런 종교적 행위들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여 불에 상하지 않고 불을 지나오는지를 보면서 점을 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일이지만,, 귀신이나 혼백을 불러내는 행위는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하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종교적 행위는 신의 뜻을 알고, 미래의 일을 예측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간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나안의 점술가들은 짐승의 내장을 살피거나 새 무리가 날아가는 형태를 보거나, 찻잔에서 차가 남긴 자국 등을 보면서 앞날을 점쳤지만, 하나님의 계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미래를 점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선택하고 세우신 예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분명히 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려주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18,18). 그러므로 미래를 묻는 사람은 점술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2. 그런데 예수님도 그의 귀신 축출 행위 때문에, 귀신의 두목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내는 마술사의 한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12,22-24). 심지어 적대자들은 예수님이 사탄과 한통속이며(3,22), 사기꾼에다가(7,12; 27,63), 돌팔이고 마술사였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서, 특별히 마가복음서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강조합니다. 마가가 기록한 열여덟 번의 기적들 가운데 열세 개가 병을 고친 이야기이고, 그 가운데 네 개가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그 첫 번 째 사건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서북해안에 위치한 도시로, 동서교통의 요충지로 인구가 조밀하고 어업이 왕성했던, 베드로의 집이 있던 곳이자, 예수님의 갈릴리 활동의 본부였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는 것은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의 일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 사람들이 놀랐는데, 그것은 그의 가르침이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자격증이나 직업이 보장하는 권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악한 귀신을 꾸짖고, 쫓아내는 능력, 악한 귀신들에게 명하시고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여기서 권위로 번역된 엑수시아’(exousia)신적 권능이라는 뜻의 강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뽑아 세우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파송했을 때 주었던 권능이기도 합니다(3,14-15).

 

사실 귀신축출과 치유 이적은 예수님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예수님만 가지셨던 고유한 권능이 아니었고, 다른 카리스마적 인물들도 행했던 기적이었습니다. 유대전쟁사를 쓴 요세푸스는 엘르아살의 귀신축출 사건을 목격했고, 아폴로니우스가 결혼식 날에 죽은 신부를 살려낸 사건, 랍비 하니나 벤 도사가 아내를 위해 빵의 기적을 행한 사건 등이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위가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귀신축출과 병 고침을 통해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르침은 치유 사건이자, 악령으로부터 해방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율법과 전승을 말로 해설하는 데 반하여, 예수님은 악한 귀신을 제압하는 행동으로 동터오는 하나님 나라를 증명한 것이지요.

 

예수님의 귀신 축출의 특징은 다른 카리스마적 마술사들과 달리, 마술적 의식이나 주문이 아니라, 자기의 특출한 인격을 바탕으로 치유를 펼친 귀신 축출이라는 점입니다. 귀신축출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으며,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믿은 것은 예수님에게서만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예수님의 귀신축출 행위가 실재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예수님의 자기 이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귀신 축출을 통해서 악의 세력이 마침내 물러갈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의 문턱에 서 있음을 확인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미 하늘에서 떨어졌고(10,18), 힘센 사람은 벌써 포박을 당했고(12,29), 하나님 나라도 이미 왔다고(12,28)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독특성은 예수님과 함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치유의 기적과 귀신축출에 종말론적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카리스마적 기적 행위자 가운데서 예수님 이외에는, 자신의 기적을 통해 옛 세상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 오리라고 생각한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의 또 다른 특징은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이 유대인이 아닌 로마 백부장이나, 두로의 여인, 혹은 사마리아의 나병환자 등과 같은 주변부 사람들을 위해 행해졌다는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적들은 유대인들이 접촉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문둥병자, 창녀, 불구자, 천덕꾸러기, 이교도 혹은 병으로 인해 부정해진 자들, 귀신들린 자들과 관련하여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귀신축출 사건은 자신의 메시아 됨이나, 신적 권능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항거였고,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기적은 주술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입니다.

 

3. 고린도 교회 안에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우상이 있는 신전에서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리스도인들과 그런 행위는 우상숭배와 같은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던 것이지요.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지만, 후에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를 사먹는 것은 두 집단 모두에게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고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해서 일상적으로 고기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국가적인 행사나 고린도 근처에서 2년마다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이스트미아 경기에서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나누어주는 경우가 가난한 사람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었던 드문 경우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한 편에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행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다영적 지식’(gnosis)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지식이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소피아를 통해 도달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 곧 신학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이런 지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계몽된 헬레니즘 지식인들이었는데, 이들은 세상에 우상이란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행위에 대하여 자유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기를 꺼려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이방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우상을 섬기던 관습에 젖어 있어서, 그들이 먹는 고기가 우상의 것인 줄로 여기면서 먹기 때문에, 양심이 더럽혀지는 사람들입니다.’(고전 8,7). 그래서 우상에게 바친 음식 먹기를 꺼려하거나,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자유롭게 그런 음식을 먹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그리스도인이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는 논란이 있었지요. 그리스도교가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적 전통들과 만날 때, 제기되는 질문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귀신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시다는 믿음과 제사를 추모의 예식으로 받아드리는 사람에게는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먹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에 귀신이 와서 음식을 먹는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래도 그 음식을 먹는 것이 거리낌이 되겠지요.

 

꼭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고린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여러 거짓 우상들을 섬기다가 최근에야 개종한 이방 그리스도인들의 의식은 아직 약하고 더럽혀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그들이 보면,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될 것이고, 그러면 바로 영적 지식을 가진 사람의 지식 때문에, 그 사람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고전 8,9-10).

 

이른바 영적 지식, ‘그노스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그에게 허용되어 있다는 권리와 자유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살 능력을 지니고 있고, 자유롭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심지어 그들은 육체적으로 무엇을 하든지 불멸의 영혼에는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몸의 영역은 영적인 세계와 확연히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의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날카롭게 경고합니다(고전 8,9). 누군가에게는 지식이 자유를 주지만, 지식이 없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말한 것입니다(고전 8,1).

 

물론 모든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있듯이 근본 됨됨이가 충실한 사람은 헛되이 우쭐거리거나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지 않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속이 알차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더 시끄러운 법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고전 8,2).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닙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방식대로 아는 것이 바울에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교만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방식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우리도 우리 주변에서 지식은 많으나 교만한 사람을 많이 봅니다. 그런가 하면 배워서 남 주는 사람도 많이 있지요. 지식을 오직 자기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확대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식을 덕을 세우는데, 다시 말해 인간과 자연에 이롭게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이었지만, 그 자유를 섬김의 자유로 받아드렸기 때문에, 약한 형제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고,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하여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고전 8,12-13). 바울은 개인적 자유와 권리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그리스도인의 행동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요.

4. 오늘 우리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확증편향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말이 바로 확증편향입니다. 이런 편향은 다른 사람이나 현실을 보는 것에서만이 아니라, 정보의 인지와 처리 과정도 편향적이게 합니다. ‘내로남불을 넘어 적대적 양극화가 더욱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에 상응하여 증오도 강화됩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금방 터질 것 같은 분노로 가득 찬 풍선 같은 세상이 된 것이지요.

심각한 것은 지식인들 사이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지식은 자신의 개인적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리와 자유를 관철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놀랍게도 지식인 사회가 더 편협한 이기주의와 집단감정의 분파주의에 촘촘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타자를 경멸하고,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사람을 교만하게 하는 지식이 아니라, 덕을 세우는 사랑입니다. 교만하게 하는 지식, 이른바 전문직업주의’(professionalism)는 사람을 더욱 이기적이고 편협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덕을 세우는 사랑, ‘집단적 사고, 계급이나 인종, 성적인 특권 의식에 의문을 제기하고,’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게 하고,’ 고통 받는 인간을 향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치유와 귀신축출이 다른 카리스마적 치유자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그것이 고통 받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치유방법도 전문적이지 않았고, 전문적인 마술사들의 눈에 예수님은 아마추어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지배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치유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여는 것은 교만한 지식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랑,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고전 1,25)고 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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