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전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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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성경구절 이사야서 9:2-7/ 디도서 2:11-14/ 누가복음서 2:1-14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20-12-24
전주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뻐하라(J. S. Bach)
찬양1부 Gesu Bambino(Pietro. A. Yon)
지휘자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지휘자
반주자
후주1부 고요한 밤 거룩한 밤(F. X. Grüber)
후주2부
성경본문 이사야서 9:2-7
어둠 속에서 헤매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쳤다.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곡식을 거둘 때 기뻐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기뻐하며,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 그들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합니다. 주님께서 미디안을 치시던 날처럼, 그들을 내리누르던 멍에를 부수시고,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던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셨기 때문입니다. 침략자의 군화와 피묻은 군복이 모두 땔감이 되어서, 불에 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디도서 2:11-14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교육하여,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된 소망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서 2:1-14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성탄전야/ 20201224()/ 저녁 730

 

구약: 이사야서 9,2-7

서신: 디도서 2,11-14

복음: 누가복음서 2,1-14

시편교독: 시편 96

 

성경: 누가복음서 2,1-14

설교: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 아우구스투스 황제, 누가복음서 저자가 예수님의 탄생시기를 정할 때, 등장한 당시 로마 세계 최고 통치자, 본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 주전 63-주후 14)인 그는 주전 63923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주전 44315일에 외할머니의 남동생이자 자신의 외증조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할 당시, 스페인에 있었습니다. 그는 외증조부의 유언에 의해 상속자가 되었고, 주전 43년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으로 그의 양자로 지명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227, 로마는 마크 안토니(Mark Antony)와 레피두스(M. Lepidus), 옥타비아누스, 세 명이 통치하는 삼두정치체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전 421, 율리우스 가이사는 신으로 인정되었고, 그의 양자 옥타비아누스는 신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다 아는대로, 주전 36년 삼두정치의 일원인 레피두스가 몰락했고, 주전 31년 악티움에서 클레오파트라와 마크 안토니의 연합군을 격파함으로써, 옥타비아누스는 집정관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인 주전 30년에는 이집트의 맹주로 인정되었고, 옥타비아누스는 로마 제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독재관(imperator)이라는 칭호는 더 일찍 획득했지만, 주전 29년에 인준을 받았고, 주전 27116일 로마의 원로원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존엄자라는 뜻)라는 칭호를 수여함으로써, 옥타비아누스는 명실공히 최고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우리는 보통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통치가 시작되었다고 여깁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주후 14년에 죽었고, 그의 의붓 아들인 티베리우스가 그를 계승하여, 주전 14년부터 37년까지 통치했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누가복음서 31절에 디베료 황제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그가 즉위한 지 열다섯째 해에, 곧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그러니까 주후 29년 경에 세례자 요한이 요단 강 지역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자신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3,1-3).

 

그러므로 예수님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후계자인 티베리우스가 로마 제국을 통치한 시기에 태어나셨고,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는 누가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탄생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온 세계에 칙령을 내려 호적 등록을 하게 한 시기와 일치시켰습니다(2,1). 이로써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당시 최고 권력자, 신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사후에는 신으로 여겨진 로마 제국의 황제와 그의 이름으로 시행된 전 세계적 인구조사와 연결시킴으로써, 아기 예수님의 탄생의 전 세계적인 중요성을 암시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온 세계적 사건임을, 당시 로마 제국의 최고 권력의 절정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유대 베들레헴 작은 마을,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대립시킨 것이지요. 지중해 동부지역에서 구주으로 추앙받은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와 이제 막 태어나 구유에 누운 하나님의 아들, 아기 예수를 대립시킨 것입니다. 한편에는 전쟁으로 내전을 종식시켜, 군사력과 폭력으로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성취한 신의 아들’, 아우구스투스를(주전 27년부터 주후 14년까지 통치), 다른 한 편에는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아들을 대립시킴으로써, 이 두 인물을 통해 실현되는 평화가 어떤 평화인지, 그리고 과연 누구를 위한 평화인지를 묻게 하는 것이지요.

 

누가복음서가 전하는 아기 예수님 탄생 이야기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첫 목격자가 들에서 양 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 탄생의 첫 목격자를 동방박사로 설정했습니다. 평화의 왕,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 탄생의 첫 목격자들이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던 것이지요. 메시아의 탄생을 그토록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아니라, 하늘의 변화, 별의 움직임으로 땅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던 이방인들이 메시아 탄생의 첫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더 잘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낯익은 것과 결별하지 않고서는 낯선 것을 만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관성과 타성으로부터 떠나지 않으면 새로워질 수 없는 법이지요.

 

얼마전 이른바 방배동 모자 사건이 있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노숙하면서 구걸하는 서른 여섯 살의 최모씨는 발달장애인이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53일에 돌아가셨어요. 도와주세요’. 또박또박 적은 쪽지를 바닥에 놓고 노숙하는 그를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그런데 그를 눈여겨 보았던 사회복지사 정미경 씨(53)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자, 주저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절대 따라 가지 말라고 한 어머니의 당부 때문이었지요. 망설이다가 따라 나선 최씨는 아무리 기도해도 엄마가 숨을 안 쉬고 살아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복지사 정씨는 기도하면 하늘에서 다 듣는다며 천국에 계신 어머니가 밥 한 끼 사먹이라고 나를 보내신거라고 애기해주자, 놀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을 거듭한 끝에 어머니가 방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 갔는데, 서초구 방배동 한 다세대주택에서 낡은 이불에 덮여 있던 60대의 어머니 김모씨는 숨진 지 반 년만에 발견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것입니다. 노숙자는 언제나 있고, 코로나 때문에 노숙자와 말을 거는 것도 꺼려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년말이라 모두 발걸음도 바빠졌지요. 그런데 정미경 씨가 서둘러 일을 마치고 발달장애인 최모씨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드러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사 정미경 씨 자신도 희귀난치병을 앓던 아들의 치유를 위해 고통스런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부터 아들의 상태가 좋아져 대학에도 진학했다고 하는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42,3)에 대한 믿음이, 서른 여섯살의 발달장애인 노숙자 앞에 그녀의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이지요. 정미경 씨는 하나님께서 노숙인 모습을 한 천사를 통해 네가 좀 가봐라하시며 절 보내신게 아닌가 합니다고 말합니다. 그녀에게는 노숙인이 천사였지만, 노숙인에게는 그녀가 천사였던 셈이지요.

 

누가복음서 저자는 아기 예수 탄생의 첫 목격자들이 목자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어야 했기에, 예수님의 탄생지를 다윗의 도시인 베들레헴으로, 그리고 다윗이 목자였기 때문에, 목격자를 목자로 설정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누가가 특별히 사회적 신분이 낮은 가난한 사람들을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의 찬가도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1,51-53).

 

성장한 예수님,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선언하신 삶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18-19).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부자 될 것이라는 약속일까요?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는 이유는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6,20; 5,3). 세상 나라와 세상 권세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빈들에서 양 떼들을 지키던 목자들을 아기 예수 탄생의 첫 목격자로 증언했고, 천사들을 통하여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2,14)라고 찬양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 주님께서 평화를 주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를 찾아냈습니다.’(2,16).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듣고서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고통스럽고 낡아빠진 이 세계를 끝장내고, 평화의 시대를 열 그리스도가 태어나셨다는데, 어찌 급히 달려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루살렘이 아니라, 베들레헴 시골 마을에서, 유대 왕 헤롯 왕가에서가 아니라, 누구인지도 모르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는데, 어찌 찾아나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와 요셉을 만나고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목격한 후, 이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어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메시아 성탄의 목격자가 되는 은총을 입었는데, 어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목자들은 성탄의 첫목격자가 되는 은총을 입은 증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런 은총을 입은 이유를 누가는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천사를 밤에 들에서 지내며 양 떼들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보내셨는지 그 까닭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에서 그 이유를 추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2,14).

 

우리는 영광평화’, ‘지극히 높은 하늘’, ‘하나님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의 평행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평화를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고, 하늘에서 빛나는 주님의 영광은 땅에서도 빛나야 하며,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 하나님이 은혜와 선호를 가지고 대하시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평화 가운데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목자들이 성탄의 첫 목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기득권자들은 새로운 통치자의 탄생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왕의 탄생을 오히려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제국의 황제는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평화의 왕의 탄생을 원하지 않습니다(9,7). 번쩍이는 창과 방패와 군화, 피묻은 군복을 승리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권력자는 백성의 어깨를 짓누르는 통나무와 압제자의 몽둥이를 꺾으시고, 침략자의 군화와 피묻은 군복을 모두 불에 태워버릴 전능하신 하나님, 평화의 왕의 탄생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9,4-6).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목자들에게 보내신 것이 아닐까요? 그 땅의 종교지도자들이나 세속 통치자들이 아니라 비천한 신분의 주민인 목자들에게 천사를 보내신 것은 그들의 비천함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단지 기뻐하셨다는 것 외에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성탄절은 2천년 전,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계절만이 아닙니다. 성탄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주님은 오늘도 아기 예수로 태어나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너무 바빠서 그냥 지나치거나,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성탄 전야에,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오늘 어디에서 태어나시는 것일까? 그리고 아기 예수 탄생의 소식을 들은 목자들이 급히 달려가서’, ‘아기를 찾아냈고’,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처럼(2,16-17), 우리도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 탄생하시는 곳으로 급히 달려가, 아기를 찾고, 이 아기에 관하여 우리가 듣고, 믿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합니다.

 

<설교 후 기도>

주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은,

우리를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고(디도서 2, 14),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니(5,9),

주님,

오늘 우리의 빈 마음, 구유삼아 우리 가운데 오셔서,

코비드-19의 세계적 대유행이 만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큰 빛을 비추시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주시옵소서.

공평과 정의로 주님의 나라를 굳게 세우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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