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다섯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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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하나님이 계신 곳에 속(俗)된 것은 없다
성경구절 사도행전 11:1-10/ 요한계시록 21:1-6/ 요한복음서 13:31-35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19-05-19
전주 내 영이 주를 높이나이다(J. Rheinberger)
찬양1부 야웨 법을 따라가는 사람들(박재훈)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거룩한 주 안에서(J. S. Bach)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arr. G. Slater)
후주2부 영광의 주를 찬양하라(arr. A. Jordan)
성경본문 사도행전 11:1-10
사도들과 유대에 있는 신도들이,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오" 하고 그를 나무랐다. 이에 베드로가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황홀경 가운데서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에서 드리워져 내려서 내 앞에까지 왔습니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 위의 네 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내게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된 것이나, 정결하지 않은 것을 먹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두 번째로 하늘에서 들려왔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모든 것은 다시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요한계시록 21:1-6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요한복음서 13:31-35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1. ‘거룩한 것속된 것은 기름과 물처럼, 함께 있기 어렵다는 생각, 아니 그 둘은 서로 대립, 충돌한다는 신념은 특히 종교, 종교인들의 삶에서 두드러집니다.

이른바 성속(聖俗)이원론은 특정 공간에서, 곧 제의공간인 성전(聖殿)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성전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생활공간과는 전적으로 구별된 영역이었습니다. 특히 성전 가운데 성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지성소’(至聖所), ()이 임재 하는 가장 거룩한 공간으로서, 오직 대제사장에게만 출입이 허용되었습니다.

 

성속이원론은 시간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안식일, 주일 등 특정한 날을 다른 평범한 날들과 구별하여, 그 날에 지켜야 할 규례를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 사순절’, ‘고난주간에 금식, 금주, 금육하면서 기도하는 것도 특정 시간이나 기간을 일상으로부터 구별하는 태도입니다.

 

성속이원론은 몸과 신분과 계급에서도 확인됩니다. 할례가 대표적이지요. 할례는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육체, 특별히 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에도 그것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인 것에 대한 죄악시, 여성 차별과 혐오가 그것이지요. 인도의 달리트(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 untouchable), 조선 시대 백정 등은 성속 이원론이 특정 직업에 의해서 분류된 신분과 계급으로 가시화된 경우입니다.

어쨌든 성과 속을 나누는 이런 태도는 특정 공간과 시간의 구별, 혹은 물건과 음식에 대한 금기(taboo)와 관계되어 있고, 그것은 거룩한 것을 지키고, 속된 것으로부터의 영향을 배제 혹은 구별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속이원론은 이것을 지킬 수 있는 특정 집단이나 계급을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구별하고, 그것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제도화하는 부정적 기능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매우 의도적으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2,27)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시고(12,9-14),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드셨는데, 그런 행동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격분시켰습니다(12,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예루살렘 성전 장막이 찢어진 것도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거룩한 곳과 속된 곳 사이를 가로 막고 나누었던 장벽이 사라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27,51; 15,38; 23,45).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또 나병에 걸린 사마리아인을 치유하심으로써, 혈통과 신분, 질병도 사람을 성속으로 구별하고 차별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10,33; 17,11-19).

 

사도 베드로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 즉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일로 같은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 그가 욥바 성에서 기도 중에 본 환상도 초대교회가 성속이원론을 극복한 과정을 보여줍니다.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에서 드리워져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땅 위의 네 발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하는 음성이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된 것이나, 정결하지 않은 것을 먹은 일이 없습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하는 음성이 하늘에서부터 세 번 들려온 후,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는 것이지요(11,1-10).

 

요한계시록의 기자도 사람들을 차별하고 박해했던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는 것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람을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구별하고, 차별하고, 심지어 박해한 질서라면, ‘새 하늘과 새 땅하나님께서 고통 받고 고난 받는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는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이지요(21,1-6).

 

초대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사이, 해방된 노예와 주인 사이,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사이의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가 회복되는 신앙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근본에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속된 것은 없다는 신앙, 다시 말해 성육신신앙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시간 안으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사건이 성육신입니다. 이로써 영원과 시간, 절대와 상대, 성과 속의 구별과 차별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유대교 내부의 개혁운동에서 세계종교가 될 수 있었던 이방인 선교의 단초를 열었고,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사이의 구별이나 차별도 극복하게 했습니다. 종교적 성속 이원론만이 아니라, 성적, 신분적, 계급적, 인종적 성속이원론, 다시 말해,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모든 기제들이 철폐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이 계신 곳에 속된 것은 없다는 신앙은 그리스도교의 변함없는, 아니 변해서는 안 되는 정체성의 하나입니다.

 

 

2. 그러나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지난 2천년 동안의 그리스도교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 가르침이나 초대교회의 전통을 철저하게 유지해오지 않았습니다. 여성차별, 이단 박해, 반유대주의,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 식민주의, 노예제도, 인종주의, 동성애 혐오,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에 대한 배타적 태도, 인종청소, 테러 등은 유감스럽지만 지금도 종교의 이름으로 진행 중인 폭력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성과 속을 나누지 않는 신앙이 해방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직업(Beruf)을 소명(Beruf)으로 받아드려, 직업에 따른 차별을 극복했고, 19세기 초,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 같은 인물은 일평생을 노예제 철폐에 헌신했습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에 맞선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선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등 수많은 신앙의 증인들이 구름 떼와 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요(12,1).

 

한국의 기독교 역사도 그랬습니다. 복음은 신분제를 극복했습니다. 전북 김제에 있는 금산교회는 자 교회라고 불리는데, 지금도 보존되어 있는 옛적 한옥 예배당 모습이 기억자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1904년 말을 타고 전주에서 정읍을 왕래하며 복음을 전하던 미국 남장로교 출신의 선교사 루이스 테이트(Lewis Boyd Tate, 최의덕 1862-1929)는 오가는 길 중간 지점인 김제 용화마을에 종종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용화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였던 조덕삼(1867-1919)의 집 마방에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테이트 선교사를 지켜봐왔던 조덕삼은 그에게 살기 좋다는 당신네 나라를 포기하고 왜 이 가난한 조선 땅에 왔는가?’고 물었다고 합니다. 테이트 선교사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당시 보수적인 유교사상에 투철했던 조덕삼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말이었습니다. 이후 조덕삼은 자신의 집 사랑채를 내어주어 예배를 드리도록 했는데, 이것이 금산교회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서 더욱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조덕삼의 집에는 머슴 겸 마부로 일하던 이자익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남 남해출신으로 6세 때 부모를 여의고 굶주림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고향인 남해를 떠나 곡창지대인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머슴이 된 것입니다. 첫눈에 그를 불쌍히 여긴 조덕삼이 그를 거둬 머슴 겸 마부로 고용한 것이지요.

 

어린 시절 고향에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이자익은 어깨너머로 배운 천자문을 줄줄 외웠습니다. 그를 지켜본 조덕삼은 비록 자신의 머슴이었지만 자기 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신앙생활도 같이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주인 조덕삼과 머슴이자 마부였던 이자익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몇 년 지나 두 사람 모두 집사를 거쳐 영수가 되어 있을 때인 1907, 금산교회는 장로를 선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후보에 오른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머슴 이자익이 주인 조덕삼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된 것이었습니다. 성도들도 놀라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조덕삼 영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금산교회 성도님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훨씬 높습니다. 그를 장로로 뽑아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조덕삼은 이자익이 장로로 피택된 3년 후에 비로소 장로가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장로가 된 이자익이 설교할 때면, 조덕삼 영수는 교회 바닥에 꿇어 앉아 그의 설교를 들었고, 후에 그가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목사가 된 그를 1915년 금산교회 2대 담임목사로 청빙한 것입니다. 이자익 목사는 장로교단에서 세 번씩이나 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조덕삼 장로 가족은 삼대 째 장로를 배출했는데, 아들 조영호는 부친 조덕삼 장로가 자비로 세운 유광학교 교장으로 일했습니다. 삼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고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곤욕을 당한 그는 북간도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 후 다시 귀국한 조영호는 1926년 금산교회 장로로 선출되었고, 예배 시간에 일본 천황궁을 향하여 동방요배를 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고난을 받고 교회는 폐쇄되었지만,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를 지킨 인물입니다. 그리고 손자 조세형 장로는 10, 13대부터 15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분입니다.

 

복음이 모든 형태의 성속 구별과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고 서로 사랑하게 함으로써 세상을 바꾼 이야기는 아마 끝이 없을 정도로 많을 것입니다.

 

 

3. 이런 복음정신을 우리는 성육신’, 다시 말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 세속화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세속화라는 단어를 매우 부정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복음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거룩한 복음정신을 타락시키는 자유주의 신학의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세속화는 비기독교화를 의미하고, 교회의 영적 타락을 부추기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속화세속주의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속되다를 표현하는 영어 단어는 ‘profane’입니다. 라전어, ‘profanum’을 어원으로 하는 이 단어는 앞에’(before)라는 의미의 접두사 ‘pro’사원’(fanum)을 의미하는 어근 ‘fan’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사원 앞에혹은 사원 밖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profane’(속된, 천한, 상스러운)의 반대개념은 종교적인’, ‘거룩한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secular’라는 단어는 라전어 ‘saecularis’에서 파생했는데, ‘한 시대나 세대에 속하는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과의 관계보다는 세상적인이라는 뜻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단어를 사용하든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교회 안과 교회 밖, 종교적인 것과 종교적이지 않은 것,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 인간적으로는 나눌 수 있으나, 하나님은 어디에도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종교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으로 영역을 나눌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 되신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세속화하신 하나님이기에, 그 분에게는 어떤 구별이나, 그런 구별에 근거한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속화세속주의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속화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입니다. ‘세속주의는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시대의 풍조를 본받는 것’(12,2)이고,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사는 것’(2,2)입니다.

세속화는 하나님의 성육신 신앙의 표현입니다. 영원이 시간 안으로, 거룩한 것이 속된 것 안으로 들어온 사건, 신이 인간이 되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속주의는 모든 것이 세속적인 가치, 곧 그 중심에 개인적 자아(ego)만이 있고, 육체적, 정신적 욕망의 무한충족이 유일하고도 최고의 기준인 세상입니다.

세속화는 인간의 육체성을 긍정하지만, ‘세속주의는 육적인 욕망을 추구합니다. 세속주의는 땅에 속한 지체의 일들, 곧 음행과 더러움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을 생각합니다(3,5).

세속화는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는 것입니다.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을 지배하게 하는 것입니다(3,12-15).

 

 

4.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회가 충분히 세속화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극복되었어야 할 성속의 구별과 차별은 여전합니다. 평등과 자유, 정의와 사랑은 이상일 뿐, 현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이 된 인간을 믿습니다. ‘성육신이 아니라 탈육신신앙이 그것입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과 함께 우리를 구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밖에서, 세상 밖으로 우리를 구원하는 죽은 신을 숭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의 육체성 긍정이 육체적 욕망의 긍정으로 바뀌고, ‘성평등성차별로 전도된 것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어서는 안 되지만, 구별되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속적인 집단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속된 것은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계신 곳, 어디나, 무엇이나 다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속되다고 하신 것을 우리가 깨끗하다고 할 수는 더더욱 없는 법이지요.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고,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지만(3,16), ‘세상적인 것을 사랑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지만, ‘는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십니다(1,9). 하나님은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은 미워하시지만,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기뻐하시고(11,20), 거짓말을 하는 입술은 미워하시지만,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기뻐하십니다(12,2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13,34-35).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이 말씀은 사랑의 정도나 강도가 아니라, 사랑하는 행위의 근거를 함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유로도 다른 사람을, 그가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이 계신 곳, 어디도, 무엇도 속된 것이 없다고 믿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죄인인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에 있을 뿐입니다(요일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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