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셋째주일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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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성경구절 사도행전 9:1-6/ 요한계시록 5:11-14/ 요한복음서 21:15-19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19-05-05
전주 주는 선한 목자(M. Praetorius)
찬양1부 백합은 희고 고와라(Arranged by Paul Christiansen)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더욱 사랑(Wm. H. Doane)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예수 사랑 하심은(W. B. Bradbury)
후주2부 예수 사랑 하심은(W. B. Bradbury)
성경본문 사도행전 9:1-6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그 '도'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환한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다.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그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요한계시록 5:11-14
나는 또 그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를 보고, 그들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 수만이었습니다. 그들은 큰 소리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권세와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또 그들 가운데 있는 만물이, 이런 말로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 양께서는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영원무궁 하도록 받으십시오." 그러자 네 생물은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서 경배하였습니다.

요한복음서 21:15-19
그들이 아침을 먹은 뒤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예수께서 두 번째로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쳐라." 예수께서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세 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해서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 떼를 먹여라.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암시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1.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 행복에 대한 가장 긴 연구의 결과’(What makes a good life? Lessons from the longest study on happiness). 하버드 대학 성인발달연구소가 1938년부터 75년 동안 724명의 남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긴 연구과제의 제목입니다. 이 연구 프로젝트의 네 번째 좌장인 심리학자 로버트 월딩어(Robert Waldinger)는 지난 201511TED 강연에서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75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연구대상이었던 724명의 남자들 가운데 60명은 아직 살아있었고, 그 때까지도 진행 중이었던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모두 90대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연구단은 1938년부터 두 개의 집단을 추적했는데, 첫 번째 집단은 하버드 대학 2학년 학생들이었고, 두 번째 집단은 보스턴의 가장 가난한 빈민가에서 태어난 소년들이었습니다.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 이들 대상 청년들은 모두 인터뷰를 했고, 의료검진을 받았으며, 연구자들이 그들의 가정을 방문해서 부모들도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들은 성장해서 공장 인부, 변호사, 벽돌공, 의사가 되었고,그 중 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몇 명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몇 명은 정신분열증을 얻었습니다. 몇 명은 신분상승을 해서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몇 명은 그와 정반대의 인생길을 걸었습니다.

 

연구자들은 2년마다 연구대상들에게 연락해서 인생에 대한 일련의 설문을 받기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들의 건강상태도 점검했습니다. 75년 동안의 연구결과는 수 만 페이지짜리 보고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보고서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결론은 간단합니다. ‘좋은 관계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커다란 교훈을 얻었는데, 첫 번째 교훈은 사회적 연결은 유익하지만, 고독은 해롭다는 것입니다. 가족, 친구, 공동체와의 사회적 연결이 더 긴밀할수록, 그것이 부족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고, 신체적으로도 건강하며 더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대로 고독은 매우 유해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은 행복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중년기에 건강이 더 빨리 악화되고, 뇌기능이 일찍 저하되며, 외롭지 않은 사람들보다 수명이 짧습니다.

 

물론 사람은 군중 속에서도 외롭고, 결혼생활에서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가 얻은 두 번째 결과는 친구가 얼마나 많은가, 안정적이고 공인된 관계를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갈등 속에 사는 것은 우리 몸에 아주 나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면 애정 없이 갈등만 잦은 결혼은 어쩌면 이혼보다도 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에 바람직하고 따뜻한 관계는 건강을 지켜줍니다.

 

관계와 건강에 관해 배운 세 번째 커다란 교훈은 좋은 관계는 우리 몸뿐만 아니라, 뇌도 보호해준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자신들이 힘들 때면 의지가 되어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기억력이 더 선명하고 오래 가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에 의지가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보다 빠른 기억력 감퇴를 보였습니다.

 

당시 18세의 청소년들이었던 연구 대상들 대부분은 부와 명성, 높은 성취를 추구해야만 좋은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부터 2000년대에 태어난 세대도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75년 동안의 가장 긴 연구가 거듭해서 보여주는 결과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들은 그들이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 성인발달연구소가 75년간에 걸쳐 724명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치고는 너무 간단한 결론이 아닐까요? ‘좋은 관계가 사람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누가 모른단 말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쉽고 누구나 다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평생 맺어온 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고, 좋은 관계는 평생 노력해야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홧김에 내뱉은 단 한 번의 상처를 주는 말,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 단 한 번의 거짓말로도 평생 유지되어온 관계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친밀하다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물론,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평생 걸리는 일이지만, 좋은 관계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처받은 관계, 망가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단 말일까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심리학자 로버트 월딩어(Robert Waldinger)100여 년 전에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쓴 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강연을 끝맺습니다: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기에.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도 (말하자면) 한 순간이다.’ 그렇습니다.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지요.

 

2.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요한복음의 말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배신했던 제자 베드로와의 만남 이야기도 상처받고 무너진 관계의 회복 과정의 한 전형을 보여줍니다.

 

갈릴리 호수, 평범한 어부였던 그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하게 하신 분, 그 분과의 만남 이후 모든 것이 달라진 베드로, 마지막 만찬 후, 올리브 산에서 예수께서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고 말씀하셨을 때,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26,33-35,75)라고 말했지만, 닭이 울기 전, 세 번 주님을 모른다고 한 베드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신 후, 절망하여 모든 꿈을 접고 다시 디베랴 바다의 어부로 돌아온 베드로, 지금 그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 물으시는 것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요? 게다가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물음은 비아냥일까요? 아니면 그의 배신을 회상시키고, 그의 잘못을 확인함으로써 그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어 마침내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게 하려고 질문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이려는 의도였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네가 나를 배신할 수 있어? 나를 진짜 사랑했던 것이 맞아?’라고 과거형으로 물으신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현재형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관계를 무너지게 한 과거의 사건을 들추고 상기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의 회복은 과거의 잘못을 상기시키고, 지적하고, 책망하는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상처받고, 망가지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때는 언제나 지금, 여기’(here and now)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지금만이 우리 것이고, ‘지금이 언제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계를 무너뜨린 것이 사랑의 부재였듯이,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오직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께서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하신 것은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의심이나 불안의 표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진지한 사랑의 표현이자 확증이지요.

 

예수님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한 베드로, 그에게 예수님은 내 양 떼를 쳐라고 과제를 주시고, 그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암시하신 후,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21,18-19). 파괴된 관계의 회복을 위한 사랑에 대한 사랑의 응답은 양 떼를 치는 일’, 곧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인도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떼를 먹여라고 하신 요한복음의 이 말씀은, 마태복음 1616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과 함께,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립된 교리, 곧 베드로 수위권과 로마의 수위권 계승에 대한 가톨릭 교리의 성서적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베드로가 목자가 된 것이 오히려 그의 훌륭한 인격이나 견고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는 것, 자기를 배신한 베드로를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통해 일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의 급한 성격과 허물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그를 목자가 되게 했듯이, 그도 주님의 양떼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요한복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베드로와 함께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이었던 바울은 살기를 띠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협하고,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핍박했던 인물이었지요(9,1).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바울은 용서받기 어려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바울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고 해도, 아니 어쩌면 친밀하기 때문에 더욱 상처는 깊을 수 있고, 무너지는 것도 한 순간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살아가면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없어서, 때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해 때문에 관계가 쉽게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언제 그랬든, 상처받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지금 여기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이유에서, 언제부터, 누구와의 관계가 망가졌든지, 지금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이고’(요일 4,19),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기때문입니다(요일 4,10).

 

요한이 말한 것처럼, 사랑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의 사랑이 사랑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의 사랑이 헛된 것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는, 아니 은혜를 원수로 갚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요일 4,18). 우리가 사랑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이유, 아니 사랑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 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요일 4,7).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랑만이 두려움 없는 사랑을 가능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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