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첫째주일
2018-11-28 17:41:06
미디어선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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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
성경구절 예레미야서 33:14-16/ 데살로니가전서 3:12-4:1/ 누가복음서 21:25-28, 34-36
설교자 채수일 목사
예배일 2018-12-02
전주 곧 오소서 임마누엘(Plain Song)
찬양1부 주의 이름은 크시고 영화롭도다(C. Dickinson)
지휘자 정록기 집사
반주자 채문경 권사
찬양2부 오 아름다운 주의 성전(R. V. Williams)
지휘자 김선아 집사
반주자 신채우 집사
후주1부 위대하신 여호와(R. Wagner)
후주2부 시온성과 같은 교회(F. J. Haydn)
성경본문 예레미야서 33:14-16
"나 주의 말이다.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에 약속한 그 복된 약속을 이루어 줄 그 날이 오고 있다.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 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12-4:1
또,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잡힐 데가 없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끝으로 우리는 주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며 권면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할 것인지를, 우리에게서 배운 대로 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게 하십시오.

누가복음서 21:25-28, 34-36
"그리고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1. 성경과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여러분은 어떤 단어가 생각나십니까? ‘언약’, ‘구원’, ‘해방’, ‘화해’, ‘사랑’, ‘진리’, ‘공의’, ‘회개’, ‘등 수많은 단어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개념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어쩌면 기쁨이 아닐까요? 위에서 언급한 핵심 단어들이 가져오는 결과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회개하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이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기쁨이건, 모든 피조 세계에 임재하시는 성령의 기쁨이건, 그런 성령의 은사에 대한 기쁨이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찬미와 기쁨, 출애굽과 구원의 기쁨, 축제들의 기쁨, 승전의 기쁨,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보호에 대한 기쁨으로 넘쳐납니다. 신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난 치유와 악령축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오는 기쁨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모든 비유들이(집나간 탕자가 돌아온 것을 기뻐하는 아버지, 달란트의 비유, 잃은 돈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 등) 기쁨과 연관된 것을 보아도, 기쁨은 실로 초대교회의 핵심 단어임이 분명합니다. 특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기쁨의 구원론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기쁨(15,11)을 노래하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궁극적 근원이며(4,4:3,1), 성령의 열매라고 증언합니다(5,22).

 

그러나 기쁨은 행복한 순간에만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과 심지어는 박해 속에서도 경험됩니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5,11-12).

예수님과 제자들은 모욕과 박해와 비난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5,41). 사도 바울도 우리의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나에게는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칩니다.’(고후 7,4; 1,24)고 고백했고, 그리스도인들도 자기처럼 그렇게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라고 권면했습니다(2,17-18).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쁨의 시기로 바라보았고(25,21,23),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와 어린 양의 혼인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기쁨을 완성하리라고 믿었습니다.(19,7).

 

 

2. 그리고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살전 5,16-18)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니, 그 뜻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살전 4,1).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초대교회들 가운데, 사도 바울을 가장 기쁘게 했던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무엇이 사도 바울을 기쁘게 했을까요? 사도 바울의 증언에 따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살전 1,3) 때문에,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주님을 본받는 공동체’(살전 1,6)였기 때문에,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살전 1,7) 바울을 기쁘게 했다고 합니다. 특히 성도들 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푸는 사랑의 풍성함이 바울을 더 없이 기쁘게 했습니다.(살전 3,12). 그래서 그랬을까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쁘게 내줄 생각을 한 공동체였습니다.(살전 2,8).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과 경쟁적 관계에 있던 이른바 유혹자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혹자는 사도 바울의 수고를 헛되게 하려고 했습니다.(살전 3,5). 이들은 더 쉬운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신도들에게 아첨하고, 구실을 꾸며 탐욕을 부리거나,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보다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했고(살전 2,4-5), 사도 바울을 사도적 권위를 지니지 못한 인물이라고 폄하했습니다.(살전 2,7).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으나(살전 2,7),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한 적이 없었습니다.(살전 2,6). 그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노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살전 2,9). 바울의 이런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서 배운 대로 했고(살전 4,1), 이것이 바울을 기쁘게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에게서 배운 대로 더욱 그렇게 살라고, 다시 말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살라고 권면했습니다(살전 4,1).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데살로니가 전서 4장 이하의 말씀 전체가 그런 삶이 어떤 삶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결한 삶’(살전 4,3), ‘형제자매를 사랑하기’(살전 4,9-10), ‘바깥사람을 대하여 품위 있게 살고, 아무에게도 신세를 지는 일이 없기’(살전 4,12),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살전 4,11),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사람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기’(살전 4,14),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도리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쓰기’(살전 4,15),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기’(살전 4,16-18), ‘모든 것을 분간하고, 좋은 것을 굳게 잡으며, 갖가지 모양의 악을 멀리하기’(살전 4,21-22) 등 일련의 윤리적 행동 규범들이 그것입니다. 이런 삶은 일상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윤리적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는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과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다만 주님의 날이 도둑처럼 올 것이니, 깨어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라고권면했습니다.(살전 4,16-5,8).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진노를 의미하지만, 빛의 자녀들에게는 구원을 의미합니다.(살전 5,9).

 

그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자 예레미야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한 복된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 다윗에게서 돋아날 한 의로운 가지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임을,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하는 이름으로 부를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예언했습니다.(33,14-16). 파멸은 언제나 복원을 이미 내포하고 있고, 심판은 언제나 이미 구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예언자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가까이 다가온 종말의 때에,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을예언하셨습니다.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21,25-28).

 

 

3. 믿지 않는 이들에게 종말은 재난, 재앙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운 시작, 구원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은 모든 이에게 임하는 사건입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종말을 맞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권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행복할 때 기뻐할 수 있어도 불행할 때 기뻐하지는 못합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때 기도하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기도하지는 못하지요. 감사할 일이 있으면 기도하지만, 짜증스런 일이 일어났을 때 감사하지는 못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매일 아침, 기쁜 뉴스보다는 대부분 나쁜 뉴스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끔찍한 살인사건, 교통사고, 수준이하의 정치, 우울한 경제지표, 이해충돌과 혐오, 미세먼지 등 기상보도에서부터 난민들의 행렬, 기후재난, ‘묻지마총기살인사건, 테러 등에 이르기까지 온통 나쁜 뉴스로 시작합니다.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교회에 대한 뉴스들도 대부분 나쁜 소식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심판과 배제, 규탄과 저주, 독단과 무지의 나쁜 소식이 지배합니다.

 

평일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받겠다고 교회 오다가 부부싸움을 하거나,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으면 그날 예배는 기쁜 예배가 될 수가 없겠지요. 하나님 만나러 왔다가 사람만 보고 가면 기쁜 주일이 될 수 없겠지요. 하나님 말씀 들으러 왔다가 뒷담화만 들으면 축제의 주일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4.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기쁨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어원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기분이 좋다고 말할 때, 기분은 ’()가 몸 안에 균형 있게 분배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렇다면 기쁨기가 뿜어 나오다’, ‘기가 솟아나오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기쁨은 안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지 밖에서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기쁨은 행복과 관련되어 있지만,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행복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외적인 조건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들이 생기면 우리는 행복을 느끼지만, 그런 조건들이 사라지면 곧바로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기쁨은 우리 내면으로부터, 안에서부터 샘솟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외적인 요인들이 우리를 잠시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쁘게 하지는 못하지요. 행복은 우리를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외적 조건이 형성되면 곧바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기쁨은 그런 외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에 행복과 다릅니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혼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를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외적 조건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홀로 있음’(alone)외로움’(Loneliness)은 다릅니다. ‘홀로 있음은 영어 단어, ‘alone’이 뜻하듯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하나 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로움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피할 수 없는 고독입니다. 진정한 관계가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 말씀의 경청에서부터 샘솟는 기쁨은 결코 외적인 불행 때문에 축소되지 않습니다. 아니 고통과 고난의 한 복판에서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셋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하나입니다. 항상 기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하나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 창립 73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73년의 역사를 축하합니다. 우리는 감사로 73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기쁨으로 현재를 축하하고, 기도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신앙 공동체가 되도록 인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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